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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세극장]실종된 남편이 남긴 세금보다 더 냉혹한 세법

  • 2024.12.16(월) 07:00

그 남자를 30년 만에 그렇게 맞닥뜨릴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이십대 초반, 저는 조그만 분식집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를 만났죠. 열정 넘치는 청년 건축가였던 그는 자상하고 따뜻한 사람이었어요. 가게를 자주 찾아오던 그와 이야기를 나눠보니 생각보다 그는 더 진중한 남자였고요. 우리는 금세 사랑에 빠졌고, 만남을 이어가던 와중에 그는 평생 함께하자며 프로포즈를 했어요. 

이 남자라면 넉넉한 형편이 아니더라도 하나씩 꾸려가면서 살면 행복할 것만 같았어요. 저는 프로포즈를 받아들였고 우리는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신혼생활은 가게 근처에 조그만 아파트를 얻어 시작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이 태어났고 사랑스러운 두 딸이 커가는 모습을 보며 더 바랄 것이 없다 생각했습니다. 제가 바라던 평범하지만 소중한 삶이었어요. 남편은 늘 일이 바빴지만 그래도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만큼은 커다란 사람이었죠.

이미지 출처: 택스워치

#감쪽같이 사라진
"출장 다녀온다던 남편이 일주일이 넘게 연락이 안 돼요."
"다른 일이 생겼나보죠. 일단 실종신고는 하세요."

아직도 그 날이 생생해요. 출장이 잦았던 남편은 그날도 지방 출장이 잡혀 있어서, 저도 아침부터 바빴거든요. 늘 그랬듯이 남편의 여벌 옷과 세면도구를 챙겨 짐을 싸주면서, 멀리 이동할 남편을 생각해 아침도 든든하게 챙겨먹고 가라고 했던 게 기억나네요. 

하지만 남편은 그 날 이후로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어요. 처음엔 좀 늦나보다 생각하고 무작정 기다렸는데요. 일주일이 지나자 무서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어요. 그 때부터 경찰에 실종신고도 하고 주변 곳곳을 찾아다녔지만 끝내 남편 소식은 들을 수 없었어요. 

그렇게 실종 상태로 6년이 지나자, 주민센터는 남편의 주민등록을 말소하더군요. 그제서야 저는 혼자가 됐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앞으로 남편 없이 살아야 하는 생활이 두렵고 막막했지만, 두 딸을 위해 저는 마음을 다잡았어요.

#또 다른 사랑
"힘들었겠어. 앞으로는 내가 당신과 아이들 옆에 있어도 될까."
"이해해줘서 고마워요. 나도 앞으로 잘 할게요." 

시간은 흐르고, 제게도 새로운 사람이 나타났어요. 그는 같은 동네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마음씨 좋은 사람이었죠. 

그는 제 사정을 다 듣고, 자기가 아이들의 아빠 역할을 하면 안 되겠냐며 조심스레 묻더군요. 그렇게 그와 우리는 새로운 가족이 됐어요. 법적으로 혼인신고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제게 누구보다 큰 힘이 되어 주었죠.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해 모두 독립했을 무렵, 원래 살던 김포 집을 팔고 둘이서 살기 좋은 일산의 아파트를 하나 장만했어요. 집 한 채 갖고 있던 저는 그 집을 팔고 이 집을 얻었기 때문에 양도소득세는 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느닷없이 세무서에서 통지서가 한 장 날아왔고, 그 내용은 너무 황당했어요.

#생각지도 못한
"1세대 2주택자로 양도세를 내셔야 합니다."
"제가요? 저는 평생 집 한 채로 살아왔는데요."

통지서에는 제가 1세대 2주택자로 간주되어 양도소득세 비과세가 적용되지 않으니 세금을 내라고 적혀있었어요. 

저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어이가 없었어요. 평생 단 한 채의 집만 가진 제가 왜 2주택이라는 건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죠. 그 길로 세무서를 찾아가 여러 문서를 뒤져보고나서는 그 이유를 단번에 알게 됐어요.

갑자기 사라져서 행방불명됐던 남편이 여전히 문서상 배우자로 제 이름 옆에 남아 있었거든요. 알고보니 남편은 주민등록이 말소되고 2년만에 주민등록을 되살렸고, 부산에서 다른 여자와 사실혼 관계로 새 가정을 꾸렸더라고요. 

남편은 새 아내와 부산의 아파트를 공동명의로 갖고 있었는데요. 제 혼인관계증명서에 남편의 이름이 있었기 때문에, 저는 여전히 그의 법적 배우자여서 1세대 2주택으로 간주된 거예요.

#냉혹한 현실
"30년 동안 남편 행방도 모르는 채 살았는데, 왜 제가 세금을 내야 하나요."
"남편이 주민등록을 재등록해 법률혼 관계가 유지되고 있어 한 세대입니다."

당연히 저는 너무 억울했어요. 남편이 떠난 지 30년이 넘었고,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데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죠. 이제 와서 남편의 존재로 제 세금 문제가 복잡해졌다는 게 너무 화가나고 속상했어요. 세무대리인을 만나 저의 상황을 모두 설명했고,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제기했습니다. 

저는 아이들과 나를 버리고 떠난 그의 재산 때문에 세금을 내는 것은 너무 억울하다며 현재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의 자필 사실혼 경위서까지 제출했지만, 제 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법은 차갑고 냉정했습니다. 심판원은 법률혼 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이상, 여전히 남편과 한 세대로 간주되기 때문에 1세대 2주택이 맞다고 결정했어요. 남편은 내 인생에서 사라진 지 오래지만, 법적으로 말끔히 부부관계를 끝내지 못했던 게 이런 결과를 낳은 거죠.

결국 저는 억울한 세금을 내야 했지만, 이를 계기로 배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제 정말 말끔히 그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제 옆을 지켜준 사람과 남은 인생을 함께하며 살 수 있으니까요.

◆절세Tip
부부가 이혼절차 없이 사실상 별거하는 경우에도 법률상 부부관계는 유지된다. 소득세법은 거주자의 배우자라는 사실만으로 거주자와 1세대를 구성한다고 본다. 따라서 부부가 사실상 이혼 상태라거나 같은 거주지에서 생계를 같이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각각 주택을 가졌다면 1세대1주택 비과세 적용을 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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