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아버지의 본처가 아니라는 사실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알았어요. 장례식장에서 배다른 형제들을 만났거든요.
#아버지의 과거
"사실 아버지는 너희 말고도 한국에 자식들이 또 있단다"
"어머니, 그걸 왜 이제야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 때 들었어요. 아버지와 어머니의 과거를요.
어머니가 30년 전 아버지를 처음 만났을 땐 유명 해운회사 사장이었고, 이미 결혼을 해 딸 하나와 아들 둘을 둔 상태였다고 했어요. 하지만 아버지는 당시 아내와는 수년 째 별거 중이었다는데요. 이후 아버지는 제 어머니와 함께 미국에 이민 와 살면서 형과 제가 태어났고, 새로 회사를 차려 지금까지 저희가 부족함 없이 살아왔다는 얘기였죠.
아버지에게 우리 가족 말고 다른 가족이 있었다니, 너무 놀라웠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어요. 어쨌든 30년 넘게 저는 아버지의 아들로서, 아버지는 우리 가족의 가장으로서 살아왔으니까요.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졌습니다. 우리 가족의 고통은 그날부터 시작됐어요.
#이복 형제들과 소송
"아버지를 데려가야겠어. 상속받을 법적 권리는 우리한테 있으니까"
"무슨 소리야. 30년 넘게 함께 살고 병간호한 건 내 어머니인데"
아버지가 쓰러지고 어머니는 1년이 넘도록 아버지 병간호를 하고 있었는데요. 어느 날 배다른 형제들이 찾아왔어요. 아버지는 거의 식물인간 상태에 가까워 의사소통이 전혀 안 되는 상황이었죠.
그들은 자신의 어머니가 법적 배우자이니 그들이 아버지 재산을 상속받을 권리가 있다면서 아버지를 데려가야겠다고 했어요. 물론 저희는 그렇게는 안 된다고 맞섰는데요.
그들은 저희 몰래 아버지를 다른 병원으로 옮기고 사라져버렸습니다. 아버지의 미국 회사는 전문 경영인 체제였는데, 그 이후로 아버지의 본처 사위와 아들들은 멋대로 경영인을 사임시키고 마음대로 회사를 운영하기 시작했어요.
어머니는 미국 회사의 배당금으로 생활하고 있었던 터라, 어쩔 수 없이 미국 법원에 본처 자식들이 회사를 운영하는 것을 막아달라는 소송을 하게 됐죠.
그들은 자신의 어머니가 법적 배우자로서 한국에서 후견인 자격을 얻었으니, 아버지의 미국 재산을 관리할 권한도 있다고 주장했어요. 미국에서의 소송도 불리한 상황으로 돌아갔고, 어머니는 결국 사실혼 관계 청산에 대한 위자료 합의서를 작성했어요.
합의서에는 본처 가족이 우리 가족에게 위자료 명목으로 700만달러를 지급하는 대신, 아버지의 자산과 상속받을 권리를 모두 포기한다는 내용이 담겼고 미국 법원도 합의서를 승인했습니다.
아버지는 이후 얼마 안 있다가 돌아가셨어요. 저희는 이제 더 이상은 신씨 가족들과 부딪칠 일은 없겠구나 생각하고 살았죠.
#상속포기 대가는 증여
"신씨 가족에게 받은 돈은 증여세 과세대상입니다"
"사실혼 관계 청산하면서 받은 위자료예요"
그렇게 일상을 보내던 중, 국세청에서 세무조사 결과 통지서를 받았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배다른 형제들과 작성한 합의서에 따라 받은 700만달러에 대한 증여세를 내라는 내용이었어요. 국세청은 700만달러를 신씨 일가에게 상속포기 대가로 받은 '사전증여'로 본 거예요. 사실혼 관계 청산에 대한 위자료는 비과세지만, 상속을 포기하면서 신씨일가에게 받은 금액은 증여세 과세대상이라는 거죠.
게다가 500억원이 넘는 아버지 재산에 대한 상속세도 아버지의 법적 가족들과 연대납부할 책임이 있다고 했어요. 그렇게 우리 가족이 내야하는 상속세와 증여세는 40억원이 넘었습니다.
과세처분이 억울했던 저는 가족을 대표로 국세청에 심사청구를 제기했지만 과세에 문제가 없다며 기각됐습니다. 국세청은 과세 당시 어머니와 저, 형 셋이 700만달러를 3분의 1씩 가졌다고 보고 저희 가족 각각에 증여세를 매겼는데요. 어머니는 바로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하셨어요.
#위자료 700만달러 비과세
심판원 "사실혼 청산으로 받은 위자료가 맞습니다"
법원 "합의금을 증여로 볼만한 충분한 자료가 없네요"
심판원은 어머니가 받은 것은 사실혼 청산에 대한 위자료이기 때문에 증여세를 과세한 처분은 잘못이라고 결정했습니다. 심판원의 결정으로 어머니의 증여세는 취소됐지만, 저와 형은 여전히 세금을 납부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저와 형은 행정법원에 소송을 진행했는데요. 법원은 "이 사건 합의만으로는 합의금을 '증여'받았다고 보기도 어렵고, 이 사건 합의금 중 '3분의 1씩'을 증여받았다고 볼 아무런 자료가 없다"며 과세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증여세는 취소됐지만, 우리 가족은 기나긴 분쟁을 거치며 지칠대로 지쳐버렸습니다.
◆절세Tip
배우자와 이혼할 때 받는 위자료는 증여세 과세 대상이 아니다. 세법에서 비과세로 규정한 위자료에는 사회통념상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부양가족의 생활비, 학자금, 혼수용품 등이 포함된다. 다만 혼수용품은 가사용품에 한하며 호화사치용품이나 주택, 차량 등은 제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