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병은 저희 가족 모두의 삶을 바꿔놨습니다.
열심히 일궈놨던 터전도 옮겨야 했고, 갑작스럽게 부모님도 잃었죠.
저희 아버지는 부동산 사업가이자 독실한 기독교 신자셨습니다. 부모님은 더 폭넓은 선교 활동을 위해 미국 이민을 고민하셨는데요. 어느 날 아버지는 가족들을 모두 모아놓고 중대 발표를 하셨어요.
#아버지의 결심
"우리 미국으로 가자. 여기서 일군 자산은 정리하고 새 기회를 찾는 거야."
"낯선 곳에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니 두렵지만 아버지 말씀 따를게요."
아버지는 결국 미국으로의 이민을 결심하셨습니다. 어머니와 동생은 낯선 미국 생활을 걱정했지만, 아버지의 확신 어린 표정을 보고 나서는 그냥 따르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아버지는 미국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는 투자 이민 프로그램을 통해 이민을 준비했고, 그 무렵부터 한국에 있던 자산을 하나둘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서울과 경기도에 있던 건물들을 팔아 미국으로 자금을 보냈습니다.
아버지는 곧 미국에서 부동산 개발 사업을 다시 시작했어요. 저와 제 가족도 아버지 사업을 돕기 위해 부모님보다 일찍 미국으로 건너가 자금 마련을 도왔습니다.
얼마 후 영주권이 나왔고, 우리 가족은 버지니아에 집을 마련했어요. 새로운 환경에서 자리잡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가족 모두가 한마음으로 노력하면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다시 한국으로
"엄마 몸이 약한데, 여기서 코로나 걸리면 치료받기 힘들 거예요."
"둘째 출산도 앞두고 있으니까…일단 한국 가서 병원을 알아보자."
하지만 미국 생활은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19가 미국을 덮쳤거든요. 미국 의료체계는 무너졌고, 건강이 좋지 않았던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가 치료를 받게 됐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건강을 회복할 때까지 잠시 한국에 머무르기로 했는데요. 그 무렵 동생이 아이를 출산하면서 부모님은 막 태어난 손주를 위해 산후조리와 육아를 도와야 했어요. 당연히 한국에서의 체류는 더 길어질 수밖에 없었죠.
#비극의 서막
"아버지 돌아가시자마자 엄마까지…이제 어떡해, 언니?"
"정신 차려야 해. 한국에 남은 유산도 정리해야 하고."
코로나19는 정말 무서운 병이었습니다. 부모님은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에 감염되셨고, 급격히 건강이 나빠졌는데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각각 다른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계셨는데, 어느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바로 다음날 어머니도 연이어 세상을 떠나셨어요. 정말 받아들이기 힘든 갑작스러운 이별이었죠.
부모님의 장례를 치르고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린 후, 유산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당연히 부모님은 미국 영주권자로 비거주자이니, 한국에 남아 있는 재산에 대해서만 상속세를 신고하고 납부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국세청에서 날아온 과세예고통지서는 제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달랐어요.
#국세청의 판단
"한국에 오래 머무르셨네요. 가족 분들은 거주자가 맞습니다."
"부모님 병원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요. 가산세는 너무해요."
국세청은 부모님이 거주자로서 한국에 주소를 두고 있었고, 한국에 머물면서 자산을 유지하고 경제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 자산까지 모두 상속세 과세 대상이라며 40억원을 내라고 했어요. 미국 자산을 신고하지 않아 가산세까지 물어야했고요.
부모님은 코로나19가 퍼지기 전까지 완전한 이민을 위한 한국 자산 정리를 하고 계셨고, 한국에 머문 건 병을 치료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저는 너무 억울했습니다. 바로 세무대리인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제기했어요.
하지만 심판원 역시 제 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부모님이 신용카드 결제를 하며 생활비를 쓴 기록, 건강보험료를 꾸준히 납부한 점 등으로 볼 때 거주자가 맞다고 했어요. 다만, 두 분이 갑작스럽게 연이어 돌아가셨던 상황을 고려해 가산세를 일부 감면하라고 결정했습니다.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로 부모님을 잃고 거액의 상속세를 내게 되면서, 인생은 정말 한치 앞도 알 수 없구나라고 느꼈습니다.
◆절세Tip
어떤 사람이 국내 거주자인지를 판단할 때에는 국외에서의 활동과 자산보유액이 아닌, 국내에서의 가족관계나 자산 등 생활관계를 통해 판단한다. 한미 조세조약에는 한국 국적 사람이 미국에서 소득이 발생했을 때 그 소득에 대한 세금을 미국에 납부했을 경우 한국에서 적절한 세액을 공제해주는 '이중과세회피'의 내용이 있지만, 상속세에는 적용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