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과 스테이블코인이 새로운 결제수단으로 부상하면서, 더이상 규제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기는 어려워졌다. 문제는 가상자산이 감시 없이 국경을 넘는 자금 이동의 새로운 통로가 됐다는 것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적발된 불법 외환거래액은 약 15조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92%에 해당하는 13조7000억원가량이 가상자산과 관련된 범죄로 나타났다.
무역대금을 가장하거나 시세차익을 노린 거래, 보이스피싱·도박 등 초국가범죄 자금이 국제적인 조직을 거쳐 해외로 빠져나갔다. 수사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특징은 특정 경로가 한 번 '안전하다'고 판단되면 지속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지난 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초국가범죄와 가상자산' 정책 세미나에서는 이러한 흐름을 어떻게 통제하고 대비할 것인지를 두고 전문가들의 논의가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기존 외환 감시 체계가 더 이상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금까지 외환 거래 심사는 은행 계좌와 현금 흐름을 중심으로 이뤄져왔다. 거래 신고를 토대로 적법성을 확인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실체가 없이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이전되는 가상자산 거래는 이러한 체계로 포착하기 어렵다.
구민우 체이널리시스 코리아 부사장은 "관세청과 협업해 적발한 사례로는, 해외 장외거래(OTC) 시장을 활용해 외환을 가상자산으로 전환한 뒤 다시 국내로 들여오거나 고가 명품을 밀반출해 현금화한 자금이 가상자산을 거쳐 이동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블록체인 원장에는 거래 시점과 연결 관계가 모두 기록돼 있다"며 "지갑 간의 이동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 흐름을 고속도로처럼 내려다보고 그 안에서 비정상적인 패턴을 찾아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온체인 데이터를 통해 특정 시점에 어떤 거래가 반복됐는지, 어떤 경로가 활용됐는지 파악해 외환 심사의 보조적 판단 근거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는 기술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제도적 기반 또한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문가 "제도 한계" 한목소리
현재 가상자산은 외국환거래법상 외환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때문에 관세청과 같은 수사기관이 금융정보분석원(FIU)의 고액 현금거래, 이상거래와 관련한 자료 등을 확보하더라도 가상자산 거래를 외환 거래와 직접 연결해 분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조광선 관세청 외환조사과장은 "가상자산이 외국환거래법 체계 안으로 들어와야 관련 자료를 종합적으로 볼 수 있다"며 "가상자산을 활용한 불법 외환거래에 대응하기 위해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밝혔다. 가상자산 사업자가 일정 부분 외환 규제 체계로 편입돼야, 모니터링과 교차 검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스테이블코인 역시 규제 공백에 대한 지적이 잇따랐다. 최근 국회와 정부를 중심으로 스테이블코인의 제도화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지만, 사업자를 통하지 않은 개인 간 이전은 코인 실명제라고 불리는 '트래블 룰(100만원 이상 가상자산 거래 정보 제공의무)'이 적용되지 않아 자금 출처와 목적을 추적하기 어렵다.
신상훈 연세대 객원교수는 "스테이블코인 발행 허용과 자금세탁 위험을 어떻게 관리할 것이냐는 별개 문제"라며 "유통과 모니터링에 대한 법리 정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영기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현재는 가상자산 사업자가 거래 정보 보고 의무를 지키지 않더라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서 "사후 제재를 위한 법령"이라고 한계를 강조했다. 이어 "때문에 국회 차원에서 자금세탁이나 외환에 관한 규율을 먼저 정비해야 향후 가상자산·스테이블코인 제도가 실효성을 가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