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심판원의 결정은 세법 해석의 전환점을 가져오고, 사회적으로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쳐왔다. 조세심판청구 사건 가운데 가장 주목받았던 7건을 정리해 봤다.

①태아라도 상속세 공제 받을 수 있다
2018년 8월 사망한 A씨에게는 부인 B씨와 돌이 갓 지난 아이가 있었다. 당시 B씨는 둘째 아이 임신 중이었는데, A씨가 사망한 지 3개월 후 둘째 아이를 출산했다. B씨는 두 명의 아이 모두 미성년 자녀 공제 대상으로 판단해 상속세를 신고했다. 그런데 국세청은 A씨 사망 당시 아직 태어나지 않았던 둘째 아이는 공제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보고 상속세를 추가로 부과했다.
심판원은 지난 1996년 태아에 대해 상속공제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결정한 바 있다. 일반적인 배우자·자녀와 달리 태아에 대해서는 명확한 규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줄곧 이러한 입장을 견지하다, 흐름이 바뀐 건 2022년부터였다. 심판원은 조세심판관 합동회의를 열어 종전 결정을 26년 만에 변경해 태아에 대해서도 자녀 공제와 미성년자 공제를 적용하는 결정을 했다.
둘째 아이는 A씨 사망 당시 태아였지만 이후 출생해 상속권이 인정되고 상속세 납세의무를 부담하기에, 둘째 아이에 대해서도 상속공제를 적용하는 게 타당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해 7월, 정부는 세법개정안에 관련 내용을 담으며 '태아 상속공제'를 법률적으로 규정했다.
②김구 손자의 공익기부, 그리고 상증세
백범 김구 선생의 아들인 고 김신 전 공군참모총장은 생전에 해외의 대학·단체 등에 거액(약 42억원)의 기부금을 냈다. 이 기부금은 한국학 강좌 개설, 한국의 항일 투쟁 역사를 알리는 김구 포럼 개설 등의 공익적 목적에 쓰였다. 이러한 취지에도 불구하고 기부금에 대해 상속·증여세 약 27억원이 그 자손들에게 부과됐다. 국내 공익법인에 출연하는 방식이 아닌 기부 형태여서, 비과세 요건(상속·증여세법 16조, 48조)에 해당하지 않은 것이었다.
백범 후손들은 국세청의 세금 부과에 불복해 지난 2019년 심판원에 심판청구를 제기했다. 1년 5개월여간 심사 끝에 심판원은 김구 선생의 후손들에게 부과된 세금 27억원 중 절반 가량인 14억원을 취소했다.
2016년 이전엔 증여세를 내야 할 사람이 살아있을 때, 세금을 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어도 증여자가 사망하면 자손들이 세금을 내야 했다. 그러나 2016년부터는 국세청이 증여세를 납부할 사람에게 관련 사실을 알려야 하는 통지의무가 생겼다. 심판원은 김 전 총장이 사망하기 전 국세청이 이 같은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부과된 세금 일부를 취소한 것이다.
증여세는 재산(기부금 등)을 증여받은 곳에서 내야 한다. 다만, 해외 대학은 한국 국세청의 행정력이 미치지 않다 보니 국내에 거주하는 증여자가 대신 내게 되어 있다. 현재도 해외 기부금에 대한 증여세를 국내 거주자가 내야 한다는 원칙은 변한 게 없지만, 심판원의 결정은 현행법 안에서 최대한 납세자 보호에 나선 묘안이었다는 평가다.
③대한민국 1%들의 세금 반발(종부세)
2005년 12월, 처음으로 부과된 종합부동산세(이하 종부세)로 조세 불복을 제기하는 사례가 급증할 것이란 우려가 컸다. 이러한 우려에 한몫한 건 종부세 도입과정에서 위헌·이중과세 논란이 있었던 부분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란은 없었다. 2005년 당시 과세표준이 높았고(주택의 경우 공시가격 9억원 이상), 세율도 3단계 구간으로 1.0~3.0%를 적용하면서 과세 대상자(상위 1%)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종부세 불복 관련한 첫 심판청구 결과는 2006년 10월에 처음 나왔다.
쟁점은 종부세 과세기준일(매년 6월 1일) 현재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잔금 청산이나 소유권 이전이 완료되지 않은 주택을 납세자의 소유로 간주해 종부세를 과세하는 게 적절했느냐 여부였다. 불복 청구 금액은 종부세(105만원)와 서택스인 농어촌특별세(종부세액의 20%, 21만원)를 합쳐 126만원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심판원은 "소유권 이전 등기를 과세기준일 이후 마쳤다는 점에서 청구인을 실제 소유자로 판단해 부과한 처분은 잘못이 없다"며 기각 처분을 내렸다.
현재 조세 불복은 대부분 국세 부과에서 비롯되고 있다. 2023년에는 2만건(이월사건 포함)을 넘기며 최대치를 기록했는데, 이는 종부세가 '사유재산제도의 취지를 훼손시켜 헌법을 위반한 것'아라는 납세자들의 반발이 반발하면서다. 실제 경정청구(환급)을 요구한 건수는 무려 4000여건에 달했다고 한다. 다만 과거든 현재든, '법률의 위헌 여부'만을 따지는 사건은 심판원에서 기각 결정을 내리고 있다.
④사상 최대 규모 '디아지오' 관세 사건
세계적인 위스키 회사인 디아지오(Diageo)는 관세청을 상대로 5000억원에 달하는 조세불복 사건을 일으켰다. 국내 유통을 담당하던 디아지오코리아가 2007년 관세청 서울본부세관 직원에게 1억원의 뇌물을 주고, 수입 위스키 과세가격을 낮추는 수법으로 480억원의 관세를 환급받은 것이 발단이었다.
뒤늦게 조사에 나선 관세청이 디아지오의 영업이익보다도 훨씬 많은 관세를 추징하자, 디아지오는 심판청구를 제기했다. 조세심판원은 관세청과 디아지오의 사이에서 인용이나 기각이 아니라 '재조사'라는 모호한 결정을 내렸다. 관세청에서 다시 세금을 계산한 후 과세하라는 결론이었다.
이 과정에서 디아지오의 본사를 두고있는 영국이 우리나라 정부에 외교적 압력을 행사했지만, 관세청이 끝까지 과세에 나서면서 법정 소송으로 불거졌다. 소송을 담당하던 로펌들은 관세청 전직 고위공무원을 앞세웠고, 전관예우 논란에 이어 로펌 교체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결국, 법원은 관세청이 과세한 세액의 70% 수준으로 양측 합의를 이끌어냈고, 판결문도 없이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됐다.
⑤대기업 100여개 해외 자회사 무더기 추징
이명박 정부 마지막 해였던 2012년, 국세청은 대기업들을 상대로 역대급 과세 기획에 나섰다. 국세청이 만든 '해외자회사 지급보증수수료 정상가격 결정모형'에 따라 대기업 100여개가 세금 추징을 당한 것이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삼성과 LG를 비롯해 현대자동차, 포스코, 롯데, 한화, 효성 등 웬만한 대기업들이 모두 연루됐다. 국내 대기업들이 해외 자회사에게 지급보증을 서주고 받는 수수료가 너무 적다는 판단이 내려졌고, 여기에 법인세가 과세되면서 벌어진 사건이다.
조세심판원은 대기업들이 국세청에 불복한 심판청구 사건에 대해 대부분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후 대기업들은 김앤장과 율촌 등 대형 로펌들을 앞세워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이 기존 세액을 감액하는 조정안을 제시하면서 일단락됐다.
⑥삼성그룹과 정유라의 증여세
박근혜 정부에서 비선 실세로 활동했던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국세청이 증여세를 추징한 사건도 거센 파문을 몰고 왔다. 삼성그룹이 승마 국가대표였던 정씨에게 말을 사줬는데, 그 가격이 40억원에 달했고 증여세 15억원이 추징됐다.
정씨는 '잠시 무상으로 이용했을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국세청은 굴하지 않고 증여세를 과세했다. 추가로 최씨가 정씨에게 넘겨준 서울 삼성동 아파트 보증금, 강원도 평창 토지 취득자금, 보험금 등에도 모두 증여세가 부과됐다.
정씨가 제기한 심판청구에 대해 조세심판원은 2018년 기각 결정을 내렸지만, 행정소송 끝에 대법원은 정씨의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말의 실소유주는 정씨가 아니라 어머니인 최씨였던 것으로 법원이 판단하면서 과세한 지 4년 만에 사건이 마무리됐다.
⑦LG그룹의 차명계좌 무효 사건
조세심판원이 서울 종각역의 SC제일은행 본점 청사에 머물렀던 2011년, 가장 복잡했던 난제는 LG그룹의 심판청구 사건이었다. LG그룹의 2대 회장인 구자경 명예회장이 동생과 조카들에게 관계사 주식을 나눠줬는데, 국세청이 LG그룹 일가를 상대로 1000억원의 증여세를 추징하면서 분쟁이 발생했다.
국세청은 구 명예회장이 계열사 주식을 실질적으로 갖고 있으면서 친척들에게 명의신탁하는 방식으로 증여세를 회피했다고 판단했다. 사실상 차명계좌를 운영했다고 단정짓고 과세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조세심판원은 국세청이 차명계좌에 대한 자금 원천을 증명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과세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LG일가에서 제기한 심판청구 9건에 대해 모두 '과세 취소' 결정을 내렸다. 이 사건을 통해 LG그룹 일가는 '화합과 배려'의 가풍을 인정받았지만, 국세청은 '부실과세'라는 오명을 받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