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논리만 내세우는 졸견이다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전문자격사 제도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자, 변호사단체를 비롯해 한국세무사회, 한국공인회계사회 등에서 결사반대하면서 했던 발언이다.
당시 정부는 전문자격사 간 협업을 허용하고 자격증이 없는 일반인도 전문자격사 법인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복수 사업장 허용 등을 통해 소비자가 세무와 회계, 법률 등을 일괄로 서비스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방안을 발표했다.
해당 방안의 목적은 공급자 위주의 전문자격사 시장을 소비자 위주로 재편, 소비자가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고 보다 높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직역단체의 거센 반발에 정부는 이를 슬그머니 다시 넣어야 했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현재의 분위기는 아직 그대로일까.
2008년만 해도, 정부의 요구에 결사반대하던 세무·회계·법률 자격사들은 언제 반대했냐는듯, 이제는 알아서 한 지붕 아래로 모이고 있다.
시장에서 세무와 회계·법률·노무까지 아우르는 종합 컨설팅 수요가 높아지면서, 전문자격사 법인들은 '규모의 경제'가 곧 생존 전략이라는 것을 깨닫고 어떻게 하면 협업을 통해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
뭉치고 창립하고…바빠지는 전문자격사 시장
세무·회계시장에서 이슈가 된 곳은 에이치케이엘(HKL)그룹이다. HKL은 황재훈 대표세무사가 2년 전 창립한 세무법인으로, 최근 회계법인과 함께 해 화제가 됐다.
대개는 법무법인에서 회계사나 세무사를 고용해 조세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회계법인이 조세파트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세무사를 채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업계의 관행을 깨고 세무법인이 회계법인과 함께 해, 기업 전반에 대한 '원스톱 컨설팅'을 제공하는 것은 신선한 충격을 줬다.
한세희 HKL해림회계법인 대표회계사는 "사람마다 이슈에 대한 경험치가 다르게 쌓여 있기 때문에 서로 협업을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해졌다"며 "각 분야의 뛰어난 전문가를 섭외해 어떻게 팀으로 꾸리느냐가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 여부를 결정한다. 종합 컨설팅 그룹화는 이제 세무·회계 시장에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됐다"고 강조했다.
법무법인과 특허법인, 세무법인, 관세법인까지 있는 대륙아주그룹도 마찬가지다.
대륙아주그룹은 법무법인으로 시작했지만 종합 컨설팅 서비스 제공과 전문성 강화·경쟁력 확보 등의 목적으로 지난해 6월 세무법인(강승윤 대표)과 관세법인(천홍욱 대표)을 창립했다.
글로벌화 된 시장에서 기업들은 법률·세무·관세가 얽힌 다양한 문제에 직면하게 되고, 기업 입장에서는 이를 한 번에 해결하는 자문사를 만나는 것이 시간이나 비용 측면에서 훨씬 낫다.
예를 들어 세무법인이 세무조사를 대응하던 중에 조세범칙조사로 전환될 경우 과세관청이 수사기관에 조세범으로 고발할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이때 법무법인이 협업한다면 원스톱 서비스 제공이 가능해진다.
대륙아주는 조세 분쟁은 법무법인이, 세무조사 대응과 절세 컨설팅은 세무법인이 맡아 원스톱 서비스 체계를 만든 결과, 창사 처음으로 지난해 연 매출이 1000억원을 넘었다.
법무법인 화우 역시 지난 2006년 특허법인 화우를 설립하고, 2013년에는 관세법인, 2017년에는 세무법인을 설립했다. 이를 통해 조세심판부터 조세 불복 소송까지 원스톱 조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덩치 키우는 회계·법무법인에…위기 느낀 세무시장
지난 18일 이현세무법인이 주최한 '고객과 전문가를 위한 초대형 세무협력벨트 구축 세미나'는 한 지붕 아래로 모이려는 전문자격 시장의 트렌드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행사였다.
이 세미나에서 안만식 서현파트너스 회장은 "대형 회계법인·메이저 로펌의 택스는 급성장하고 있지만, 정작 세무사는 과거의 답습에 그치고 있다"며 "대규모 전문용역 시장 개척을 위해서는 부문별 전문성과 경험 있는 인력이 필요하다. 상생협력은 코어(core) 조직이 아닌 원펌(One-firm)일 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사실 개별 세무대리인들은 규모와 인원의 열세로 국내 주요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조세불복·인수합병(M&A)·기업승계 등 굵직한 수임을 따내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회계법인도 세무시장에 뛰어들면서 세무사들의 먹거리는 더욱 줄어들었다.
최근에는 플랫폼 사업자까지 세무 시장에 가세하며 세무사들의 업무 영역을 위협하고 있다.
이에 안 회장은 초대형 세무협력벨트를 구축해 규모의 경제로 세무시장의 위기를 타개한다는 전략을 내세운 것이다.
안 회장은 ①단기적으로 세무 협력 벨트에 100명이 참여하는 걸 목표로 ②중기적으론 300명이 협력해 주요 기업으로부터 제안요청서(RFP)를 받을 수 있는 연합조직을 만들고 ③장기적으로 1000명 규모의 협력 벨트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메이저 로펌, 대형 회계법인과 달리 세무법인들은 아예 RFP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서현파트너스는 PKF서현회계법인을 중심으로 이현 세무법인·법무법인 두현 등 각 분야의 전문가(회계사 170여명·세무사 40여명·변호사 5명)들이 전략적으로 제휴해 회계·세무·법률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연합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