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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이혼하면 세금 아껴요"…국세청 절세가이드가 '웃픈' 이유

  • 2024.07.12(금) 07:00

2008년 국세청 절세가이드에 이혼 절세방법 소개
OECD 국가 대부분 배우자 상속세 없어

'이혼을 권하는 세법' 또는 '이혼을 권하는 나라'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상속·증여세 과세체계는 부부가 공동으로 일군 재산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증여의 경우 증여재산 6억원까지 배우자 공제가 가능하며, 상속세는 상속재산 최소 5억원에서 최대 30억원까지 공제가 가능하다.

반면 재산분할에 대해서는 부부가 혼인생활을 하면서 형성한 공동재산이라는 개념을 적용해 증여세를 과세하지 않는다. 세금을 아끼려면 부부가 백년해로하면서 살기 보다는 이혼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해서 나온 것이 바로 이 말인 셈이다. 

국세청이 지난 2008년 발간한 '세금 절약 가이드' 책자. 이혼 시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는 방법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출처: 국세청]

이에 웃지 못할 일도 생겼다. 매년 절세가이드 책자를 발간하며 국민들에게 세금을 아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국세청이 현명한 이혼 방법을 알려주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지난 2008년 국세청이 발간한 '2008년 세금 절약 가이드' 책자에는 이혼 시 위자료로 부동산을 준다면 소유권 이전 등기를 할 때 '위자료 지급' 또는 '증여'가 아니라 '재산분할청구'로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위자료 지급을 원인으로 등기를 한다면 양도소득세가 나오기 때문이다.

만약 증여를 한다면 배우자는 6억원까지 공제가 되지만, 이혼한 뒤 증여한다면 타인에게 증여하는 것이 돼 6억원의 공제를 받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당시 언론에서는 이 내용을 그대로 '절세방법'이라며 기사를 쏟아냈다. 상속이나 증여보다는 '이혼'을 권하는 웃픈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미 이런 절세가이드가 나오기 전에도 독창적 화풍으로 이름을 알린 고(故) 김흥수 화백은 상속세를 염려해 2007년 부인과 이혼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 2011년에는 상속세를 염려해 이혼을 하고 재산분할을 한 납세자에 대해 국세청이 가장이혼이라며 증여세 36억원을 부과하기도 했는데, 2017년 대법원은 "재산의 무상이전으로 볼 수 없고, 증여세 과세대상이 되지 않는다"며 납세자의 손을 들어준 일도 있었다.

부부는 경제공동체, 다 알면서 왜 이래요?

부부가 혼인생활을 유지하는 동안, 각자의 것을 정확히 반반씩 나눠서 살기는 쉽지 않다. 가부장적인 문화가 강한 60대 이상 세대는 부부가 함께 일군 재산도 남편 명의로 된 경우가 많은 편이다.

조세심판원에 불복이 제기된 심판청구 사례를 보면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결정문에 따르면 아내는 남편과 함께 쌀가게를 운영하며 살다가 40년 만에 부부 공동명의로 집을 사면서 증여세를 냈다. 남편은 아내에게 40년 동안 고생의 대가라면서 부부 공동명의를 제안했는데, 당시 아내는 내 명의의 집이 생겼다는 사실에 기뻐서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증여세를 다 낸 것이다.

그러던 중 남편이 사망했고, 상속세까지 내게 되자 갑자기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같이 40년 동안 살면서 형성한 공동재산인데 왜 증여세에 상속세까지 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결국 심판청구를 한 것이다.
(관련기사☞[절세극장]아내라는 이름으로…40년 만에 생긴 진짜 내 집)


이런 이유로 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는 배우자의 상속세는 전부 면제한다. 배우자에 대한 상속세가 없는 국가는 덴마크, 프랑스, 헝가리, 아이슬랜드, 아일랜드, 리투아니아, 룩셈부르크, 폴란드, 포르투갈, 슬로베니아, 스위스, 영국, 미국 등이다. 

우리나라처럼 배우자 상속세 공제한도를 두는 국가는 벨기에, 핀란드, 독일, 그리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터키, 일본 등이다. 이들 국가의 공제한도는 우리나라의 최대 공제 한도인 30억원보다도 낮지만, 과세체계가 유산취득세 방식이기 때문에 유산세 방식인 우리나라보다는 세 부담이 적은 편이다.

배우자 '상속세 부담↓' 공감…폐지는 의견 엇갈려

배우자에 대한 상속세 부담을 줄여주자는 의견에는 전문가를 비롯해 일반인들도 대부분 공감한다.

상속세의 취지는 부의 무상이전, 부의 대물림으로 인해 자원이 일부에 집중돼 사회에 순환되지 않을 경우 생기는 부작용을 막겠다는 것이다. 또한 노동 대가가 아닌 불로소득이라는 차원에서도 상속세를 부과한다.

여기서 의문이 제기된다. 대물림이라는 것은 세대 간 자산 이전이며 불로소득이라는 개념은 부모가 일군 자산에 대해 자녀가 기여한 바 없이 무상으로 받는 것으로, 부부 간 자산 이전이 여기에 해당하냐는 것이다.

가정주부 역시 혼인 이후 형성한 재산에 대해 기여도가 인정되는데, 하물며 경제활동을 통해 부부가 재산을 형성했다면 재산에 대한 명의가 본인 아니더라도, 이를 불로소득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부부 중 한 명이 사망 시 남은 배우자의 기대 수명이 기껏해야 5~10년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과도한 상속세는 남은 여생의 생존권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진권 강원연구원장은 "지금 집값이 많이 올랐는데, 우리나라 배우자 상속공제는 너무 낮아서 문제가 된다. 이혼하면 재산분할에 대해 세금을 안 내니까 이것을 '택스 인센티브'라고 부른다"며 "재산이 많으면 많을수록 이혼하는 것이 낫다. 이혼을 유인하는 상속세제인 셈이다. 부부의 재산은 부부가 공동으로 모은 것이기 때문에 세금 자체가 없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수남 세무법인 다솔 대표세무사는 "세계적으로 배우자 상속은 동일세대 간 이전이기 때문에 과세를 안 한다"며 "부부 중 한 명이 사망하고 상속받으면 남은 배우자의 기대수명은 다해봐야 5~10년인데, 남은 배우자가 재산을 좀 쓰게 해주고, 나머지를 자녀에게 상속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배우자에 대한 상속세를 아예 폐지하면 증여세 과세체계와의 혼란이 발생할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현행 상속세 과세대상은 피상속인(재산을 물려주는 사람)이 사망하기 10년 이내에 증여한 재산도 포함하는데, 배우자에 대한 상속세를 폐지할 경우 증여세와의 형평 문제와 증여보다는 상속을 유도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지연 세무회계 여솔 대표세무사는 "상속세 폐지는 상속세만 놓고 봐야 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건드리기 어렵다.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배우자 상속공제 금액을 높이는 것이 낫다"며 "공제액에 대해선 논의가 더 필요하겠지만, 현재 최대 30억원이라는 기준은 낮은 것이 맞다"고 밝혔다.

강남규 법무법인 가온 대표변호사는 "배우자 상속세 과세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내 것을 내가 가져간다는 의미에서 이혼 시 재산분할에는 세금이 없는데, 사별에서는 과세논리가 다르다"며 "세법상 배우자에 대한 취급은 이혼과 사별 모두 똑같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실무적으로 들어가면 사실혼, 외국국적자, 증여세 연동 등 여러 문제가 따라와서 상속세를 개편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며 "그렇다고 법적으로 맞지 않는 과세체계를 손 놓고 있으면 안 된다. 배우자 상속세는 개편하되, 부수적으로 생기는 문제는 발생할 때마다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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