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최근 내놓은 국세통계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2년 귀속 기준 연말정산을 받은 대한민국 근로자의 숫자는 총 2053만여명.
이 가운데 소득세를 납부한 인원은 66.4%인 1363만여명이었습니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 이것이 조세의 원칙이니 이들은 납세의 의무를 (반강제로)성실히 이행한 것이죠.
그렇다면 나머지 33.6%인 690만여명의 직장인들은 어땠을까요?
짐작하셨겠지만 이들은 근로를 제공하고 소득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소득세를 십 원 한장 내지 않은 '면세근로자'들입니다.
상대적으로 급여 수준이 낮고, 각종 소득공제 및 세액공제 등이 뒤섞여 있는 근로자 소득세 과세체계 상 근로자 본인의 의사가 아닌 불가항력적으로 면세근로자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굳이 편을 들자면 고의성 자체는 없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면세근로자의 단면을 살펴보겠습니다.
연간 총급여액(연봉-비과세 소득)을 기준으로 근로소득공제, 인적공제, 국민연금 등 보험료 공제, 근로소득세액공제, 자녀세액공제, 표준세액공제 등 가장 기본적으로 적용되는 공제들을 부양가족 수에 따라 계산하면 이른바 '근로소득 면세점'이 도출됩니다.
2022년 기준 근로소득 면세점이 얼마 인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지난 2020년 국세청이 추출한 근로소득 면세점이 1400만원~3100만원 구간에서 형성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2022년 근로소득 면세점도 이와 유사하거나 조금 낮거나 높은 수준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면세근로자 문제는 그동안 이런 저런 논란이 많았던 사안입니다.
고의성이 없고, 제도의 태생적 한계에서부터 비롯된 부분이지만 누구는 내고, 누구는 안내는 구조 자체는 불형평적인 측면이 명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학계를 중심으로 합리적 대안이라 할 수 있는 '근로소득세 최저한세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고, 이를 정치권이 받아 '국민당당법'이라는 명칭으로 근로소득세 최저한세제 도입을 골자로 한 입법안이 국회에 제출되기도 했습니다.
2017년 제출된 법안인데 내용은 연 2000만원 이상 근로소득을 벌어들이는 근로자들에게 월 1만원, 연 12만원의 근로소득세를 의무부과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국회 논의가 이루어지는 했는데, 유야무야 됐고 법안은 폐기되고 말았습니다.
솔직히 면세근로자, 라고 하면 (실제 근로소득 면세점에서도 드러나지만) 저소득층이 대부분이라는 막연한 인식이 깔려 있습니다.
제도를 입안하고 도입하고 해야 할 정부와 정치권 입장에서는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으니, 면세근로자 축소 문제에 있어서 굉장히 소극적 접근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정권의 비수가 될 수도 있는 민감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지금껏 변죽만 울려왔을 뿐 그 어떤 구체적 행동도 표면화된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면세점의 도출 과정과 실제 국세청 통계상 면세근로자의 소득 분포를 보면, 무조건 저소득 근로자들만 면세근로자에 속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는 대목이 확연합니다.
다른 것은 다 떠나 국세청 통계상 면세근로자, '결정세액이 없는자' 분포를 살펴보겠습니다.
690만여명의 면세근로자 중 총급여 기준 1000만원 이하자가 295만여명으로 절대 다수이긴 하지만 4000만원 이하자도 73만여명, 8000만원 이하자도 1만3000여명, 심지어 억대 연봉자로 분류할 수 있는 1억 초과자도 1403명이나 존재합니다(참고로 1억 초과자의 경우 대부분 '국외근로소득자'로 추정됩니다).
근로자 개인의 상황에 따라 소득공제 및 세액공제가 적용되기 때문에 총급여 1000만원 이하자에서도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소득세를 낸 케이스도 분명 존재합니다.
이러한 측면을 고려하면 근로소득세 최저한세제 도입에 정부와 정치권이 겁부터 집어먹을 필요는 없어보입니다. 면밀하게 따져보고 합리적인 수준에서 면세근로자 축소에 도움이 되는 바람직한 '숫자'를 찾아내고 이를 입법화 할 여지가 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안하고 있는 것 보면, 그저 '의지'가 없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지난 2014년 기준 48.1%에 달했던 면세근로자의 숫자는 이후 감소세를 타면서 지난해 33.6%까지 내려왔습니다.
정부는 명목임금 상승 영향으로 면세자 비율이 줄어들었다는 설명입니다.
쉽게 말해 '자연감소'를 했다는 소리인데 앞으로 이 비중이 어느 수준까지 형성될지는 알 수가 없는 일입니다. 분명 10년 전 대비 크게 감소한 것은 맞지만, 자연감소분만 보고 환호하기 보다는 '국민개세주의'라는 조세원칙이 훼손되고 있는 상황을 바로잡는 묘안을 정부와 정치권이 고민해 내놓는 것이 더 바람직한 방향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