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인 회사원이면서 세무 일을 하고 싶었다.
단순한 꿈으로 국세청의 문을 두드렸고, 30여 년 뒤에는 조세 행정의 전 영역을 두루 경험한 드문 관료가 됐다. 초등학생 때 장래 희망란에 '회사원'을 적어냈던 소년이 지금은 조세 집행을 경험하고, 조세정책을 설계하며, 납세자의 권리를 판단하는 길을 걷고 있다. 이상길 조세심판원장의 얘기다.

회사원을 꿈꾸던 소년이 국세청을 선택한 이유
1967년생인 이상길 원장이 초등학교를 다니던 1970년대는 지금과는 장래 희망 지형이 달랐다. 당시만 하더라도 의사나 과학자 같은 전문직을 꿈꾸는 학생은 많지 않았고, 대학 진학 자체가 쉽지 않았다. 사회적으로는 '안정된 직장'에 대한 선호가 강했다. 그런 시대 분위기 속에서 그는 장래 희망란에 주저 없이 회사원을 적었다. "따박따박 월급 받는 이름있는 기업 직원"이 되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부모 역시 대기업 취업을 바랐다고 한다.
진로에 대한 확신은 고등학생 때 찾아왔다. 세무 분야에 관심이 생기면서 '공인회계사'를 꿈꾸게 된 것이다. 성인이 되자 그는 안정적인 직장과 세무 업무라는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할 수 있는 길을 고민했고, 국세청이라는 답을 찾았다. 자신이 원하는 직업적 가치가 가장 잘 맞닿아 있는 곳이었다.
조세인의 삶, 현장에서 정책까지 차근차근 밟다

1995년, 행정고시 38회로 공직사회에 발을 딛게 됐다. 첫 발령지는 영도세무서(현 중부산세무서) 총무과장이었다. 총무라고 하면 일반행정만 떠올리지만, 당시 총무과는 징세(체납관리)와 세원 관리까지 맡는 부서였다. 인원 구성만 봐도 징세 인력이 가장 많을 만큼, 세무 행정 전반을 경험할 수 있는 자리로 평가받았다.
그는 1995년부터 2001년까지 국세청에서 근무한 뒤, 사무관 인사 교류가 활발하던 시기에 기획재정부 세제실로 자리를 옮겼다. 2년간 일해보고 적성에 맞으면 계속 남고, 아니면 국세청으로 돌아가는 방식이었지만 그는 세제실을 선택했다.
세제실 재산세제과에서의 첫 업무는 "재미있었다"고 기억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 부동산 정책이 쏟아지던 때였고, 투기지역 과세체계를 기준시가에서 실거래가로 전환하는 정책 설계에 직접 참여했다. 당시 1세대 1주택 비과세 요건에는 '거주'가 없었는데, 세제실에서 일부 지역에 거주요건 도입을 설계한 것도 이 시기다. 일선 세무서(동울산·김포)에서 재산세과 업무를 경험한 덕분에 세제실 업무가 낯설지 않았다는 점도 장점으로 작용했다. 현장을 이해한 관료가 정책을 다루게 된 셈이었다.
조세행정의 마지막 관문, 판단자로 서다
2022년 7월, 조세심판원 상임심판관(법원으로 치면 판사 역할)으로 임명됐다. 국세청에서는 세금을 부과하는 입장에 있었고, 세제실에서는 조세정책을 설계하는 입장에 있었다면, 과세가 정당했는지를 판단하는 위치에 선 것이다. 조세 행정의 세 축을 모두 경험한 관료는 공직사회에서 드물다.
그의 행정 스타일에는 일관된 키워드가 있다. 철저한 절차 주의다. 이는 그의 MBTI(성격 유형 검사 지표)가 ISTJ인 것과도 맞닿는다. 조용하지만 책임감이 강하고, 정해진 절차와 기준을 중시하는 유형이다. 그의 좌우명도 "성실하게 살자"다. 자녀들에게도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늘 강조한다.
2024년 9월에 조세심판원장으로 취임하며 자신의 색깔을 보다 분명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특히 강조한 것은 영세납세자 구제였다. 그는 심판원에 들어온 첫해부터 영세납세자 심판청구가 늘어나는 현실을 피부로 느꼈다고 했다. 조세 지식 격차가 불리한 절차로 이어지는 문제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본 셈이다.
현재는 미래 지향형 리더로서 성장해 있다. 그는 직원들에게 "정책이 어떻게 설계되고 어떻게 집행되는지 전체 흐름을 이해하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심판원 직원이라면 국세청 실무 경험이 큰 자산이 된다고 말한다. 과세 메커니즘을 알아야 납세자(청구인)의 입장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국세청 근무 경험이 없는 심판원 사무관들을 중심으로 교류 인사를 확대하려는 계획도 갖고 있다.
그가 강조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AI(인공지능)다. 그는 심판원의 조사서 품질을 높이기 위해 내년부터 AI 시스템을 시범 도입한 뒤 본격 운영한다는 계획을 직접 진두지휘하고 있다. 단순히 기술을 들여오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떤 기능이 필요한지 민간 기업과 소통하고, 직원 교육까지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AI, 영세납세자 보호, 인사 교류 확대. 이 세 가지는 이 원장이 앞으로 심판원을 어디로 이끌지 보여주는 핵심 키워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