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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도둑 '맛김'이 그냥 '먹는 풀' 된 사연

  • 2019.08.06(화) 09:54

[그건 왜 바꾸나요]세법개정 뒷얘기
WCO, 관세적용 품목분류 변경

해마다 정부 세법개정안에는 다양한 내용이 담깁니다. 올해도 16개 법률에 걸쳐 무려 153개 조항을 개정하는 내용이 포함됐죠. 개정되는 항목이 너무 많다보니 일부 내용들은 무엇이 어떻게 왜 바뀌는지도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달라지는 세법 중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흥미로운 내용이 숨어 있는 세법들을 살펴춰봤습니다.[편집자]

김을 기름과 간장, 소금 등으로 맛을 내 구운 맛김을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조미료 등으로 맛을 냈다고 해서 맛김 혹은 조미김이라고 부르죠. 

그런데 이 조미김을 수출입할 때 관세를 매기는 기준이 달라진다고 하네요. 정부가 관련 세법(관세법)을 바꾸려고 개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한다고 합니다. 한국인의 대표적인 밥반찬, 조미김에는 무슨 일이 있길래 법까지 바꾸게 됐을까요.

알고보니 전세계적으로 적용되는 WCO(세계관세기구) 규정이 달라졌고, 그에 따라 우리나라도 법을 바꿔야 했다고 합니다. 수출입품목에는 관세를 매기기 위해서 품목을 구분, 번호를 달아 놓는데요. 그 구분이 아주 세밀하게 돼 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예를 들어 돼지고기도 넓적다리살과 복부살의 품목과 관세율이 다르고요. 뼈가 있는 것과 없는 것, 냉장·냉동한 것과 염장한 것, 건조한 것, 훈제한 것 등을 모두 구분해서 다른 품목, 다른 세율로 구분하고 있죠.

따라서 수출입 물품의 품목을 분류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인데요. 품목분류가 너무 세분화 돼 있다보니 같은 물품을 국가마다 서로 다르게 구분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국가간 무역분쟁도 발생할 수 있는데요. WCO에서는 이런 품목분류를 통일키시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WCO 품목분류위원회에서 조미김에 대한 결정이 내려졌고, WCO회원국인 우리나라도 이것을 따르게 된 것이죠.

조미김은 주로 한국과 일본에서 생산되지만 세계적으로 소비되는 품목인데요. 우리나라에서도 일본을 비롯해 중국, 미국, 태국 등지로 수출하는 수출 효자품목이죠. 2017년 우리나라의 김 수출액만 5억달러를 기록했거든요.

그런데 조미김에 대한 품목분류가 나라마다 달랐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주요 생산국인 우리나라와 일본은 조미김을 '기타의 조제식료품'(2106.90호)으로 구분했지만, EU와 영국에서는 '식물의 기타조제품'(2008.99호)으로 분류하고 있었던 것이죠. 두 분류 간의 기본세율에 차이는 없었지만, 국가간 협정 등에 따라 세율도 달라질 수 있는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결국 WCO는 지난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품목분류위원회를 열었는데요.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섰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대표는 조미김의 특별함을 강조했습니다. 김과 같은 해초들은 보통의 먹는 식물들과는 다른 생물학적 세포구조를 갖고 있고, 그에 따른 생산과정도 복잡해서 특정 생산라인까지 필요하다는 것이죠. 모 조미김 광고문구처럼 '좋은 김만 골라 살짝살짝 여러번 구워줘야 하는' 등 까다로운 제품이니 단순한 식물 조제품과 같이 구분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EU대표는 김과 같은 해초나 해조류도 결국 식물이기 때문에 '식물의 기타조제품'으로 구분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르헨티나 등 일부 국가대표들도 EU의 입장을 옹호했죠. 쉽게 말해 조미김이건 그냥 김이건 김도 그냥 먹는 풀이라는 쪽과 조미김은 그냥 풀이 아니라 정말 만들기가 어려운 특별한 음식이라는 쪽으로 편이 갈렸던 겁니다.

위원회는 결국 표결을 통해 결정을 내렸는데요. 아쉽게도 19대 17로 EU쪽의 주장이 채택됐습니다. 조미김도 '식물의 기타조제품'이라는 결론이죠. 

개정 세법은 내년 1월 1일에 수입되는 조미김부터 적용되는데요. 우리나라로 조미김을 수입하는 사업자들은 내년부터 바뀐 품목분류에 따라 수입신고를 해야 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합니다. 또한 조미김을 수출하는 사업자들도 해당국가의 품목분류 개정 및 FTA 협정내용을 잘 확인해야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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