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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 국감 극장]② 누가 치즈를 옮겼을까

  • 2014.10.17(금) 19:34

세법개정 효과 놓고 여야 격론..'부자증세' 급부상
"부자에게 65조원 증세" vs "국민 속이는 짓"

 

# 세수 진실게임

 

"부자들에게 세금 깎아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부자에겐 세금을 더 많이 걷어왔단 말입니다."

 

17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는 세금 정책과 효과를 놓고 새정치민주연합과 '새누리+정부' 연합이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6년째 '부자 감세'를 비판해온 야당을 향해 정부와 여당이 '부자 증세' 논리를 펼치며 조목조목 반격을 시도했다.

 

정부가 내놓은 '부자 증세'에 대해 야당은 반박하고, 여당은 옹호하는 분위기가 노골적으로 연출됐다. 기재부는 2008년 사상 최대의 감세 정책을 내놓을 때 5년간 90조원의 세금을 깎아준다고 발표했었다. 하지만, 이후 정부가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었고, 이제 남은 감세분은 25조원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그래서 '부자증세'라는 게 정부의 논리다.

 

야당은 정부의 통계 자료와 감세 추정 방식에 문제가 많아 '부자증세' 주장을 믿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정부의 계산 방식이 거의 '대국민 사기극' 수준이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반면 여당은 별다른 문제가 없다며 야당에게 '오버하지 말라'고 일축했다.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쉽게 검증하기 위해 2000년 발간된 베스트셀러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를 빗대 '부자 감세 vs. 증세' 논리를 풀어봤다.

 

2008년 서민쥐와 부자쥐는 거대한 치즈 창고를 발견했다. 창고에는 1년간 나눠먹고도 남을 만큼 풍부한 치즈가 있었다. 창고 관리인은 두 쥐에게 5년간 90개의 치즈를 나눠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후 글로벌 위기가 닥치면서 부자쥐에게 나눠줄 치즈를 덜 주거나, 오히려 빼앗았고 서민쥐에게는 예정대로 나눠줬다고 관리인은 주장했다. "부자쥐한테는 치즈 안 줬다고요."

 

▲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14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고민에 잠겨 있다. /이명근 기자 qwe123@

 

# "어? 뭔가 불공평한데"

 

이명박 정부 첫 해였던 2008년 직전에는 연간 10조원이 넘는 세수 흑자(세입예산보다 실적이 많은 현상)를 기록하면서 곳간이 넉넉한 시절이었다. 당시 기재부는 소득세율과 법인세율 인하 등 세법 개정을 통해 5년간 90조원의 감세 혜택을 국민들에게 돌려줬다.

 

서민·중산층·중소기업(이하 서민)에게 40조원의 감세를 제공했고, 고소득층·대기업(이하 부자)에겐 50조원의 세금을 깎아줬다. 서민보다 부자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갔기 때문에 '부자 감세'라는 비판이 많았다. 여기까지는 여야가 어떠한 반론이 없다. 문제는 그 이후에 벌어진 증세에 대한 해석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이날 국감에서 '부자 증세'의 증거를 제시했다. 그동안 야당이 제기해 온 '부자 감세'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5년간 꾸준히 세법 개정을 통해 부자들로부터 65조원의 세금을 더 받았다는 설명이다. 원래 이들에게 50조원을 깎아주려고 했는데, 오히려 15조원을 더 걷게 됐다는 얘기다.

 

대신 서민에겐 지난해까지 40조원의 감세 혜택을 그대로 유지해왔다. 부자에게 15조원을 더 걷은 것을 감안하면 도합 25조원의 감세만 남아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원래 깎아주려던 90조원 중에 25조원 밖에 안남았으니, 더 이상 '부자 감세'라고 하지 말라는 선전포고였다.

 

2008년에 나눠주기로 한 90개의 치즈 중 40개는 서민쥐에게, 50개는 부자쥐에게 더 돌아갔다. 서민들이 반발하자 관리인은 부자들에게 매년 조금씩 치즈를 빼앗았고, 2013년까지 65개를 환수했다. 서민쥐들에겐 40개의 치즈를 그대로 나눠줬고 현재 창고에는 25개의 치즈가 여유분으로 남았다. "이래도 부자에게만 치즈 몰아줬다고?"

 

▲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17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문창용 기재부 세제실장의 귓속말을 듣고 있다. /이명근 기자 qwe123@

 

# "참 잘했어요"

 

새누리당의 경제통인 '219' 이한구 의원은 최 부총리의 주장에 적극 동조했다. 고소득층은 증세를 많이 했고, 중산층 이하 서민은 감세 규모가 훨씬 크다는 것을 확실히 정리해달라고 요구했다. 일반 국민들은 선전만 듣기 때문에 실체를 모른다는 지적도 곁들였다.

 

이 의원은 "이명박 정부 이후 박근혜 정부도 서민을 위한 복지 정책을 많이 확대했다"며 "서민은 40조원의 감세 혜택을 받고, 복지는 80조원 이상 받았는데, 그런 정책을 정확히 홍보하라"고 최 부총리를 격려했다. 다른 여당 의원들도 정부의 '부자 증세' 주장에 대부분 동참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기획재정부 차관을 지낸 류성걸 의원도 "정부의 조세정책은 부자 감세와 서민 증세가 아니다"며 "이명박 정부 때 소득세 최고세율 구간 38%를 신설했고, 지난해에는 최고구간을 3억원에서 1억5000만원으로 낮췄다"고 설명했다.

 

부자쥐에게 65개의 치즈를 빼앗는 동안 서민쥐에겐 훨씬 많은 치즈를 제공했다. 이미 예정대로 40개의 치즈를 내준 것도 모자라 80개의 치즈를 더 퍼줬다. "서민쥐는 이제 불만 없지?"

 

▲ 질의하는 이한구 의원(새누리당) /이명근 기자 qwe123@

 

# "계산이 틀렸잖아"

 

야당의원들은 정부와 여당의 계산 방식에 의문을 품었다. 2008년의 세법개정을 2013년까지 5년간 세수 효과로 따져보자고 했는데, 2018년까지의 추정치까지 섞여있다는 얘기다.

 

정부의 발표는 2009년에 36조원, 2010년 5조원, 2011년 6조원, 2012년 8조원, 2013년 9조원의 증세가 이뤄졌다고 하는데, 이것은 각각 이후 5년의 세수 효과까지 모두 더해져 있어서 증세 효과가 부풀려졌다는 것이다.

 

최재성 의원은 "감세 기준치는 2013년까지로 묶어놓고, 증세는 2018년까지로 하는 계산 방식이 어디있나"며 "부총리가 허위 증언을 하고 있다"고 몰아붙였다. 홍종학 의원도 "매년 20조원씩 부자감세를 5년간 100조원 했다가 철회하면, 기재부 방식은 0원이 나온다"며 "부자감세를 증세로 만드는 기적의 방식으로 국민을 속이는 것"이라고 따졌다.

 

치즈창고 관리인은 2009년부터 5년간 36개, 2010년부터 5년간 5개, 2011년부터 5년간 6개, 2012년부터 5년간 8개, 2013년부터 5년간 9개의 치즈를 회수한다고 한다. 이런 방식으로 부자쥐들에게만 65개의 치즈를 빼앗는다는 얘기가 맞을까.

 

2013년까지 정확한 치즈 재고를 계산하려면 2009년은 1년치 빼고 29개, 2010년은 2년치 빼서 3개, 2011년은 3년치 빼서 3개, 2012년은 4년치 빼서 6개, 2013년은 아예 없는 것 아닌가. "그럼 진짜로 뺀 치즈는 41개밖에 없잖아."

 

▲ 최재성 의원(새정치민주연합) /이명근 기자 qwe123@

 

# "받은 적 없는데?"

 

여야가 국정감사에서 '부자 증세' 여부를 놓고 공방을 벌였지만, 정작 납세자들에게 와 닿는 부분은 없었다. 기재부가 2008년 90조원의 세수를 깎아주려고 한 것도, 이후 서민에게 40조원의 감세를 해왔다는 이야기도 피부로 느끼기 힘들었다.

 

세금을 깎아서 가계에 도움이 됐다는 서민들의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세부담이 점점 늘어났다는 하소연 뿐이다. 65조원의 세수를 국가에 헌납했다는 부자들 중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해묵은 증세와 감세의 '뜬구름'만 잡고 있었을 뿐, 실제 납세자의 어깨에 얼마나 무거운 세금이 얹혀있는지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는 이는 없었다.

 

더 황당한 것은 최종 실적치가 아니라 매년 정부가 세법개정안을 발표할 때 국회에 제출하는 추정치를 기반으로 했다는 점이다. 애초부터 세법개정 효과를 실적으로 정확하게 구분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숫자를 놓고 하루종일 지루한 공방만 이어진 것이다.

 

창고의 실제 주인이 관리인에게 "그래서 쥐들에게 치즈를 얼마나 나눠준 것이냐"고 물었다. 관리인은 "사실 얼마를 나눠줬는지는 계산할 수 없고, 모두 추정일 뿐입니다"고 했다. 이를 지켜보던 서민쥐는 이렇게 말했다. "난 받은 적도 없는데, 이 빼앗긴 기분은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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