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세불복은 부당한 처분을 받아 권리나 이익을 침해당한 자가 처분을 취소·변경해달라고 청구하는 절차다. 쉽게 말해, 납세자의 권리구제를 위한 제도이다.
권리구제의 가장 중요한 점은 첫 번째로 신속한 처리, 두 번째는 간편한 불복 청구 절차로 납세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조세불복 제도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하지 못한다.
대표적인 것이 소송을 진행하기 전, 반드시 행정심판을 거쳐야 하는 필요적 전치주의 때문에 우리나라의 조세불복 소송은 사실상 4심제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일반 소송이 '지방법원(1심)→고등법원(2심)→대법원(3심)'이라면 조세불복은 행정법원(1심)에 가기 전에 필수적으로 심사·심판청구를 거쳐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행정심판 청구도 국세청과 감사원, 조세심판원 등으로 나뉘어 납세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복잡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납세자가 심판 청구를 하고 결론을 받아들기 전까지 처리 기간만 평균 6개월 이상 걸리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해 7월 발표한 '조세불복제도 개편방안' 보고서에서 "현재의 조세불복 구조가 복잡해, 납세자가 어떤 절차를 어떤 기관에 제기해야 유리할지 알기 어렵고, 이로 인해 불복을 포기하거나 절차상 실수로 청구가 폐기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조세불복 절차, 왜 복잡할까
조세불복 절차는 앞서 말했듯이 '행정심판 청구→법원 3심제'의 구조이지만, 행정심판 청구에 앞서 국세청에 제기하는 과세전적부심사와 이의신청 절차도 있다.
과세전적부심사는 과세예고 통지를 받고 30일 이내 세무서 또는 지방국세청에 신청하는 것이다. 여기서 과세관청이 거부를 한다면, 90일 이내 이의신청을 해야 한다.
이의신청의 경우 반드시 필요한 절차는 아니며 납세자가 곧바로 심판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문제는 심판청구를 할 수 있는 창구가 3개이다보니 납세자는 어디를 선택해야 할지 혼란스럽다는 점이다.
심판청구는 ▲국세청의 심사청구 ▲조세심판원의 심판청구 ▲감사원의 심사청구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며, 여기서도 납세자의 청구가 기각(납세자 청구 거부)을 당하면 행정소송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다.
대체로 납세자들은 심판원의 심판청구를 선호한다. 국세청의 심사청구는 국세청이 과세기관이라는 점에서 납세자들이 못 미더워하는 경우가 많고, 감사원의 경우 심판원보다는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면에서 심판원을 선호하는 것이다.
이 같은 구조를 이해했다면,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질 수있다. 대체 심판청구는 왜 이렇게 복잡할까? 심판청구를 일원화하면 납세자도 국가기관 모두 편하지 않을까?
심판창구 일원화 or 조세법원 설립, 더 나은 것은?
현행 조세불복 제도에 대한 개선방안으로 제시된 것은 ①심사·심판청구 통합 ②행정심판과 소송 1심의 기능을 통합한 조세법원 또는 통합조세심판소 설치 등 두 가지다.
이 중에서도 전문가들은 사실상 4심제인 조세불복 절차를 3심제로 줄이는 방안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는 연초 택스워치가 보도한 '2025 조세개혁 과제'를 통해 "행정심판을 거치지 않고도 소송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열어놔야 한다. 왜 조세불복만 왜 4단계를 거쳐야 하느냐"라며 "납세자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면 안 된다"고 밝힌 바 있다.
김석환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달 열린 '납세자 권리구제 제도 개선' 토론회에서 "조세 행정심판과 소송의 1심 기능을 통합하는 통합조세심판소를 설치하고, 특허법원과 같이 항소심 단계의 조세전문법원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세법은 내용이 복잡하고 사실관계 판단이 어려운 만큼, 세법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판사가 따로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져 왔다. 이에 조세전문법원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다.
현재 심판원 비상임심판관으로 활동하는 한 교수는 "판사들의 경우 조세법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법 논리로만 따져도 판결은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상 1심인 심판단계에서 쟁점을 정리해줘야 한다"며 "심사청구는 폐지하고 심판원의 심판청구로 통합해야 한다는 것에는 공감하지만, 심판원이 법원보다는 납세자 입장에서 고려하는 부분이 많아서 심판단계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른 조세 전문 변호사는 "납세자 입장에서는 소송까지 가기보다는 행정심판에서 구제받는 것이 시간과 비용 면에서 훨씬 좋은 방법"이라며 "심판부가 충분한 전문성과 독립성을 갖추고, 심판단계에서 과세의 부당성을 면밀히 심리할 충분한 시간과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화해·조정 절차 도입된다면?
조세불복 제도 개선의 또 다른 방법으로 제시되는 것은 화해·조정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 별도의 행정심판 기관 없이 행정법원이나 재무재판소가 사건을 심리하는데 눈에 띄는 것은 협의과세 제도를 적극적으로 운영한다는 것이다. 과세 결정 전, 과세관청과 납세자 간의 협의를 통해 추후 불복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불복을 방지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안창남 전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조세쟁송제도 개편방안' 정책 연구용역 보고서를 통해 "미국 등에서 운용하고 있는 사전 조정절차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며 "과세전적부심사뿐만 아니라 행정심판 단계에서도 조정·화해·중재 등을 통해 결론을 찾는다면 불필요한 행정력 낭비는 물론 막대한 분쟁 비용도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심판원도 과세관청과 납세자가 협의를 하는 '조정제' 도입을 추진했지만, 국세청의 반대로 현재는 답보 상태에 있다.[참조기사: 신속한 구제는 어디에?…조세심판원 개혁 3대 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