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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속한 구제는 어디에?…조세심판원 개혁 3대 과제

  • 2025.05.22(목) 07:00

'납세자 권리 구제기관'

조세심판원을 검색하면 제일 먼저 나오는 설명이다. 행정부 내 준사법기관인 조세심판원은 납세자의 억울한 세금을 구제해주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된 기관이다.

납세자를 구제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다. 정확한 심리를 한다고 시간을 질질 끌며 심판 결정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면 납세자 입장에서는 권리 구제가 아닌 고통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심판원은 불복 사건 심판을 신속하게 처리하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정답은 '아니오'다. 한 해 1만건 수준의 불복이 제기되고 있으며, 심판원은 심판 결정을 하고 납세자에게 통보하는데 무려 185일(지난해 평균 처리일수)을 소요하고 있다.

국세기본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법정처리 기한인 90일 이내보다 두 배 이상 걸리는 셈이다. 

납세자 입장에서는 사건처리 시간이 길어질수록 세무대리인 비용과 세금 납부액에 따른 이자비용 등 납세협력비용까지 추가로 짊어지는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다. 

심판 결과가 아무리 정당하더라도, 결과 도출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면 납세자들은 심판원을 통해 구제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심판처리 일수를 대폭 줄이는 등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신속한 납세권리 구제를 위해 심판원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 3가지를 살펴봤다. 

조세심판원 심판정. [사진=이대덕 기자]

개혁과제 1. 심판 처리일수 단축(조사서 작성, AI)

조세 불복은 과세처분을 안 날로부터 90일 이내 제기할 수 있다. 

①심판원에 심판청구를 제기하면 ②통상 1~2달 후 처분청(국세청 등)이 심판원에 답변서를 제출한다. 이때 심판부 배정도 이뤄진다. 

③이후 심판조사관이 청구서·답변서 등을 토대로 사실관계를 조사한 뒤, 사건 담당자가 조세심판관회의 심리자료(사건조사서)를 작성한다. ④심판관은 사건조사서를 주요 심리자료로 보고 '기각 또는 인용' 여부를 판단한다. 

조사서는 단순한 행정 서류가 아니라 사건 심리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조사서 작성에는 상당한 시간과 정교함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심판원 관계자는 "사건 담당자 한 명이 일주일 동안 만들 수 있는 조사서는 1~2건 정도"라고 설명했다. 

조사서 작성 시간이 짧아진다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심판원은 사건 종결 시점 전체를 앞당길 수 있고, 신속한 결정에 따라 납세자로서는 납세협력비용도 줄일 수 있다. 

최근 심판원은 조사서 작성 단축 도구로 인공지능(AI)을 도입하려는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재 AI 기술을 활용한 심판청구 절차 지원방안이라는 주제로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으며, AI 도입으로 과도한 업무량을 줄이는 것이 목표다. 

심판원 관계자는 "올해 하반기에 연구용역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올해 예정된 개청 50주년 포럼에서도 AI를 주제로 한 심판원의 중장기 발전 방안도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개혁과제2. 소액사건 조정제

심판원이 신속한 납세자 권리구제를 위해 개선해야 할 두 번째 과제는 이른바 '조정제도'다. 

지난해 심판청구 처리 건수는 1만178건으로, 평균 처리일수는 185일이었다. 이는 전년 평균 처리일수인 172일보다 2주일 가량 늘어난 수치다. 

납세자와 과세관청 간 세금 분쟁이 길어지는 이유는 양측의 '입증 부족'으로 사실관계 확인이 되지 않아서다. 장기 미결사건(청구일부터 1년 경과) 건수도 2023년 343건에서 지난해 413건으로 뛰었다. 

장기간 소요되는 현재의 심판 시스템은 납세자나 과세관청 모두 실익 없는 소모전이라고 할 수 있다. 납세자는 납세협력비용 부담을 짊어지고, 과세관청도 불필요한 행정비용이 따른다.

이에 입증이 어려운 항목에 대해 과세범위를 조정하려는 논의도 있었다.

2023년, 심판원은 ‘납세자 권리보호 강화방안’을 발표, 양측(납세자·과세관청) 당사자 합의로 분쟁을 조기에 종결할 수 있는 조정제 추진계획을 담았다.

조정제는 청구세액 5000만원 미만인 소액사건 중 ①상속·증여세법상 부동산의 시가 평가와 ②증빙이 불분명한 수입 금액 관련 등 특정 사안에 대해서만 적용하도록 했다. ③이후 전문가로 구성된 조정위원회가 마련한 조정안에 대해 양측이 동의하면, 분쟁이 끝나게 된다. 

그해 심판원은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한 세법개정 건의안을 기획재정부에 제출했지만, 최종안에는 담기지 않았다. 

그 이유는 국세청의 반대였다. 제도 시행 초기에는 조정 대상 사건이 적더라도, 제도가 자리잡으면 향후 조정 대상을 확대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다음해에도 입법에 실패했고, 올해는 관계기관 간 합의점을 찾지 못해 관련 개정 건의안을 제출하지 않았다고 한다. 

입법 추진은 일시 소강한 상태이지만, 여전히 심판원 내부에서는 조정제 도입이 영세납세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가장 현실적인 개혁 방안으로 꼽는다. 

어느 정권이든 영세납세자 권리구제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기 정권에서 조정제 도입 논의가 재점화될 가능성이 있다. 

개혁과제3. 심리 중인 사건의 세법해석 문제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세법해석에 관한 질의회신 절차도 개선해야 할 과제 중 하나다. 

2016년 2월, 국세기본법 시행령 제10조에 생긴 새로운 규정 때문에 오히려 심판원과 납세자 간 혼란과 혼선이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이 규정에 따르면 심판원에서 불복이 진행 중인 개별사건에 대해, 기재부(세제실)가 세법해석(예규)을 할 수 있다. 이런 규정이 생기기 전에는 심판원에 계류 중인 사건에 대해 기재부는 유권해석을 하지 않았다.

납세자 입장에서는 불복 과정에서 무기 하나를 더 얻은 것이지만, 심판원 입장에서는 심리 중인 사건에 대해 유권해석이라는 외부 압력이 가해지는 셈이다. 

현재 법원이나 헌법재판소에서는 계류 중인 사건에 대해 유권해석 기관이 민원 처리를 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비해 조세심판만 유권해석의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이로 인해 혼선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관련 사안에 밝은 한 교수는 "대리인을 통해 기재부에 질의를 넣어 인용을 받았는데, 심판원에서 기각당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납세자 입장에서는 황당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납세자뿐만 아니라 국세청에서 악용(예규 로비)할 소지가 있는 이 규정을 삭제하는 게 맞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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