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11월, A씨는 116평 면적의 고급주택을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았다. 이 주택은 시가를 예상할만한 비교 대상이 없었고 결국 '보충적 평가방법'인 기준시가를 주택의 시장가격(시가)으로 보고, 2021년 5월 관할 세무서에 신고했다. 그러나 국세청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국세청이 의뢰한 감정평가기관에서 평가한 금액을 시가로 판단해 상속세를 추가 과세했다. A씨는 "주거용 건물은 감정평가 대상이 아니다"라며 심판청구를 제기했지만, 조세심판원은 기각 결정을 내렸다.(조심2022서7997)
아파트는 똑같은 연식과 면적에 거래가 활발히 되기 때문에 시가를 알 수 있지만, 비슷한 연수와 면적의 매물이 드문 주택의 경우 시가를 파악하기 굉장히 어렵다.
매매거래라면 매수인과 매도인이 적정한 가격에 협의하면 되지만, 상속이나 증여로 이뤄진 거래라면 시가를 파악해 신고하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때 사용하는 방법이 기준시가 또는 개별공시지가다.
보충적 평가방법인 기준시가와 개별공시지가는 비교 대상 물건이 거의 없고, 거래가 드물어 적정한 가치를 매기기 힘든 비주거용 건물이나 토지가 주로 대상이다.
문제는 기준시가나 개별공시지가가 시가보다는 낮게 책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부담해야 할 상속·증여세액이 줄어들고 이를 절세전략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시장가격을 그대로 신고한 납세자는 억울한 상황이 발생한 셈이다. 이에 국세청은 몇 년 전부터, 납세자가 기준시가 등으로 신고했더라도, 국세청이 '감정평가'를 맡겨 재과세를 하고 있다. 감정평가한 시가와 기준시가의 차이가 크면 과소신고로 간주하는 것이다.
국세청은 지난 2020년부터 이른바 꼬마빌딩(개별 기준시가가 공시되지 않는 중소규모의 상가·사무실) 등 비주거용 부동산에 대해 감정평가를 해왔는데,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초고가 아파트·호화 단독주택 등 주거용 부동산 자산도 감정평가를 하기로 했다.
앞선 사례처럼 과거에도 고급 주거용 건물에 대해 일부 감정평가를 시행했지만, 앞으로는 감정평가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 용어 TIP!
상속·증여세법상 부동산의 보충적 평가 방법은 평가 기간 내에 시가를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에 적용한다. 기본적인 보충적 평가 원칙은 기준시가로 보면 된다.
기준시가는 국세청이 매년 고시하는 국세 부과 기준 금액으로, 양도소득세, 상속세, 증여세 등의 세금을 계산할 때 사용되는 가격이다.
개별공시지가는 각 필지별 토지의 가격을 평가한 것으로,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등의 과세표준을 정하기 위해 국토교통부에서 산정한 가격이다.
공시가격도 국토부에서 토지, 건물 등 부동산에 대해 조사해서 발표한 가격이다. 국세와 지방세의 기준 금액이 되고, 주택의 경우 단독주택가격과 공동주택가격으로 구분해서 발표한다.
'초고가 아파트'도 꼬마빌딩처럼 과세한다
국세청이 주거용 건물(아파트 등)도 감정평가를 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시가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기준시가로 상속·증여하는 행위를 막기 위함이다.
비주거용 건물은 감정평가를 하면서, 주거용 건물은 대상에서 제외한 것에 대해 논란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주거용 건물의 가격이 많이 오르면서, 실제 시가랑 공시지가 차이가 커졌다"며 "동일한 자산을 물려주는데, 주거용에 대해서만 감정평가를 안 할 이유는 없지 않느냐"라고 지적했다.
초고가 아파트는 거래가 잘 이뤄지지 않아 비교 대상 물건이 거의 없어 시가를 찾기 어렵단 점에서, 꼬마빌딩과 성격이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그동안 주거용 부동산은 감정평가 사업에서 제외돼 시가보다 훨씬 낮은 공시가격으로 상속·증여가 가능했었다"며 "심지어 중형 아파트보다 대형 초고가 아파트의 증여세가 낮아지는 역전현상이 발생할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강남구 도곡동에 있는 전용면적 223.6㎡의 타워팰리스 1채를 증여했다고 가정하자. 추정시가라면 70억원에 달하지만, 기준시가(37억원)를 적용한다면 내야할 증여세는 약 13억7000만원이다.
반면 성동구 성수동의 '트리마제' 전용 84㎡를 시가인 40억원으로 증여했을 땐, 증여세는 15억2000만원이 된다. 시가로는 더 저렴한 주택이 세금은 더 많이 내는 것이다.
감정평가 대상 기준은 무엇?
국세청이 모든 초고가 주택을 대상으로 감정평가를 하기는 예산상 문제로 쉽지 않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초고가 주택이 감정평가 대상이 될까?
국세청은 상속세 및 사무처리 규정을 통해 감정평가 대상 선정 기준을 밝히고 있다.
현재 규정에 따르면 ①추정 시가와 상증법 61조부터 66조까지 방법으로 평가한 가액(보충적 평가액)의 차이가 10억원 이상이거나 ②추정 시가와 보충적 평가액 차이의 비율이 10%를 넘겼을 때 감정평가 대상으로 선정된다.
내년부터는 새로운 기준이 마련돼, 신고가액이 추정시가보다 5억원 이상 낮거나 또는 차액의 비율이 10% 이상이면 감정평가 대상이 된다.
다만 국세청은 납세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감정평가 대상 건물의 금액기준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금액기준이 공개되면 납세자가 금액기준 이하의 주택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기준시가로 신고하는 등 악용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런 감정평가 제도 자체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한다. 시가를 확인하기 어려운 모든 부동산을 대상으로 감정평가를 하는 것이 맞지만, 예산(감정평가기관 의뢰 비용)을 고려하면, 모든 납세자의 세금 내용을 검증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결국 감정평가 제도는 납세자의 자발적 감정평가를 유도하는데 취지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세금을 추징당할 수 있으니 "알아서 잘 신고하라"고 납세자에게 경고하는 셈이다.
실제 국세청은 선별적으로 감정평가를 시행하면서 성실신고 효과를 보기도 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납세자의 자발적 감정평가 신고 비율은 2020년 9%에서 2021년 15.1%, 2022년 18.5%, 지난해엔 21.3%까지 늘었다.
상당한 세수입을 확보하는 '쏠쏠한' 재미도 봤다. 국세청은 지난해까지 총 727건의 감정평가를 진행했다. 대상은 주로 소규모 비주거용 부동산인 꼬마빌딩이었는데, 감정평가를 진행한 결과 과세가액이 껑충 뛰었다.
작년 한 해만 살펴보면, 감정평가 대상은 총 192건으로 납세자가 매긴 재산의 가치(신고액)는 약 1조2000억원이었다. 하지만 국세청이 의뢰한 감정평가기관에서는 8000억원이 많은 2조원으로 평가했다. 2021년엔 평가대상 가치(2조5000억원)와 납세자 신고액(1조5000억원)의 차이는 1조원에 달한다.
국세공무원 출신인 강정호 세무법인 대륙아주 세무사는 "국세청의 감정평가 대상이 많을수록 납세자는 추징당할 우려 때문에 감정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모든 물건에 대해 감정평가하는 것도 아니고, 일부 물건은 보충적 평가방법인 기준시가도 인정하는 것은 조세형평성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 현행 상증법 체계와 맞지 않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국세청 감정평가, 무조건 시가로 인정받을까?
납세자 입장에서는 국세청이 의뢰한 감정평가기관의 감정가액이 부당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국세청은 이런 납세자의 불만을 막기 위해 2개 이상의 감정기관에 평가를 의뢰하고, 이후 재산평가심의위원회에서 감정가액의 적정성 등을 따져 시가로 인정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감정가액이 시가로 인정되면 이를 상속·증여 재산의 가치로 본다.
국세청이 이런 절차를 거쳤음에도 납세자 입장에서는 감정평가 결과를 인정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때 납세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납세자는 재산평가심의위원회의 심의과정에서 의견을 낼 수 있다. 회의에 참여하려면 '재산의 매매 등 가액의 시가 인정 심의 신청서'를 작성해 법정신고기한 만료일로부터 상속세는 4개월 이내, 증여세는 70일 이내까지 관할 지방국세청에 서면(방문·우편)으로 신청하면 된다.
다른 방법으로는 사전 권리구제 제도인 과세전적부심사, 사후 권리구제 제도인 이의신청·심사·심판청구를 통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한 세무법인 소속 세무사는 "납세자가 감정평가 방법으로 상속·증여세를 신고하지 않았더라도, 세무 검증과정에서 납세자 주관으로 감정평가를 실시해 국가주관 감정평가액을 검증할 수 있다"며 "과세와 직결되는 감정평가액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