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은 왜 가만히 있어요?
올 초 세금환급 플랫폼에 대해 묻자, 한 국세공무원이 토로한 말이다. 세금환급과 관련 없는 일반 국민들이 삼쩜삼 등 세금환급 플랫폼의 무차별적인 광고에 시달리면서 국세청은 왜 가만히 있냐는 민원이 쏟아졌다며, 답답하다고 하소연한 것이다.
왜 가만히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국세청은 그동안 세금환급 플랫폼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꺼려왔다. 국세청이 나서지 않았던 이유는 허위·과장광고를 담당하는 부처는 공정거래위원회인데다가, 세금환급 플랫폼 업계의 영업은 민간기업의 고유한 영역이기 때문에 정부부처에서 나서서 제지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국세청은 그동안 세금환급 플랫폼의 주요 고객인 배달라이더 등 인적용역소득자들의 환급금 신청 안내문 발송 또는 홈택스에서 '환급금 찾아주기' 서비스 제공과 같은 우회적인 방법을 통해 대응해왔다.
이랬던 국세청이 최근 들어서는 기조가 확 바뀐 모습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과도한 광고·스크래핑·대량환급 폭탄 '3박자'
일반 국민들이 가장 많은 불만을 제기하는 부분은 무차별적인 광고 공세다.
세금환급 플랫폼 업계에서 1위를 차지하는 삼쩜삼의 경우 '1인 평균 환급액 19만7500원'이라는 문구의 광고를 무차별적으로 내보내는 것이 문제가 됐다. 사람들은 본인에게 환급액 19만원이 발생한 줄 알고 착각해 환급금을 조회해보게 되는데, 이를 겪은 사람들은 소위 삼쩜삼에 '낚시질'을 당했다고 토로하는 것이다.
지난 5월 종합소득세 신고 기간에는 한 달 동안 수차례 쏟아지는 카카오톡 광고메시지에 질렸다는 사람들도 다수 등장했다. 삼쩜삼은 고객들에게 4월 말부터 5월 말까지 20여차례 광고메시지를 발송했다.
광고 내용은 5월 환급 사전신청 안내와 공제 누락 안내, 환급금 감소 가능성 안내 등 환급금을 신청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며 고객을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문구가 대부분이었다. 관련기사☞"바보야, 문제는 탈세야"…'국세청 vs 납세자' 싸움 만든 세금환급 플랫폼
5월 종소세 신고 기간 동안 삼쩜삼과 세이브잇 등 세금환급 플랫폼 업체들이 홈택스에서 대량으로 납세자의 정보를 스크래핑(자동 데이터 추출 기술)해 서버에 과부하가 걸리게 한 것도 문제였다.
업체들이 세금신고가 많은 대낮에 대량으로 스크래핑을 시도하면서 일반 납세자들의 종소세 신고에 차질이 생기자, 국세청은 플랫폼 업체들의 접속을 차단하거나 새벽이나 밤에 스크래핑을 하도록 조치했다.
일각에서는 민간업체의 영리활동을 위해 세금을 들여 구축한 국가 전산망을 사용하게 놔두는 것이 정상이냐는 지적도 나왔다.
더 큰 문제는 소득세 담당 세무서 직원들의 자자한 원성과 부당환급 문제였다.
국회에 제출된 종합소득세 경정청구 건수는 2022년 37만3000건이었지만, 2023년 58만7000건, 올해 5월까지 59만6000건으로 폭증했다. 올해 5월 한 달 동안 세금환급 플랫폼 업체가 신고한 세금환급 건수(종소세 신고 포함)는 400만건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5월 한 달 동안 국세공무원 1인당 1000~3000건의 신고서를 검토해야 하는 셈이다.
이를 2~3개월 내에 처리해야 하는 국세공무원들은 부당공제 등을 일일이 검토하기가 어려워 사실상 소액은 그냥 환급해주는 일이 발생하면서, 국세청이 부당환급을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내부적으로는 소득세 담당 직원들의 원성과 대외적으로는 부당환급 방치라는 비난에 시달리게 되면서 국세청이 결국 칼을 뽑을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내몰린 것이다.
반격나선 국세청…세금환급 플랫폼 바뀔까
국세청은 세금환급 플랫폼 업체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 직접적인 개선 요구와 더불어 국세청 시스템 정비 등 투 트랙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동안 플랫폼 업체에 직접적인 발언이나 제지를 꺼렸던 국세청은 지난 6월 서울지방국세청 명의의 공문을 업체에 보내 ▲이용자에게 중복 인적공제 안내 ▲광고성 환급금 문자를 국세청에서 발송한 것으로 오인 ▲예상 환급금을 확정 금액처럼 안내 등의 문제들로 인해 국세청의 행정력이 낭비된다며 이를 시정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더해 국세청은 지난 9월 24일 자비앤스빌런즈(삼쩜삼)과 토스(세이브잇), 널리소프트(SSEM), 비즈넵 등 12명을 불러 간담회를 진행, 12개의 사항을 개선하도록 요구했다.
주요 내용은 ▲책임감 있는 민원응대 ▲근로소득만 있다면 청구기한 내 청구 ▲고용증대 세액공제 사후관리 ▲개인정보 이용동의 목적 등 명확하게 안내 ▲환급금 계산근거 요약화면 제공 ▲신고기간 중 대량 스크래핑으로 홈택스 과부하 문제 대책 마련 ▲인적공제 등 요건 확인 안내 ▲연금계좌세액공제 한도 계산 프로그램 오류 수정 ▲관련 증빙서류 제출 ▲미존재 서류 요청 금지 ▲사업장 제공자 과세자료 수입금액 확인 ▲과세정보 유출 보안 강화 등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무분별한 광고에 대해선 소관 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가 현재 조사 중에 있으며 결과가 나오는대로 업체들이 문제가 된 사항을 시정하기로 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업체들은 국세청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업체들이 과도한 수수료를 받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국세청은 민간기업의 사업활동이기 때문에 수수료율을 조정하라는 등의 직접적인 요구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와 별개로 국세청은 최근 폭증한 경정청구에 대응하기 위해 부당공제 점검 프로그램 개발에 착수했다.
현재 국세공무원들이 경정청구 신고서의 인적공제 항목을 검토하는 경우, 일일이 부양가족의 소득이나 중복 공제 여부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1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부당공제 점검 프로그램이 있다면 무엇이 문제인지 화면에서 바로 알려주기 때문에 신고서 검토에 시간이 많이 단축된다.
국세청은 인적공제 점검 등 부당공제 점검 프로그램의 일부 기능은 이미 일선 세무서에서 활용하고 있으며, 향후에는 신고서 전반에 대한 검토가 가능하도록 계속 개발 중에 있다고 밝혔다.
국세청 관계자는 "국세청이 개선을 요구한 내용에 대해 플랫폼 업체들은 이미 반영했거나, 곧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반영하는지 지속적으로 사후관리를 할 것"이라며 "부당공제 점검 프로그램 도입의 경우 일일이 화면을 조회하면 시간이 걸려 전산을 통해 문제를 미리 보여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개발이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당공제 점검 범위를 계속 확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