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매년 발표하는 세법개정안을 들여다보면 "처음 말한 것과는 다른데?"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는 조세정책 공약을 내걸고 그에 대한 세법개정안을 내놓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정부가 내놓은 세법개정안의 이유나 배경보다는 '내용'에 집중하고 평가한다. 누군가는 국회를 통과한 세법개정안이 진짜라며, 정부가 내놓은 세법개정안의 탄생 배경을 알 필요가 없다고도 말한다. 세법을 '숫자'로만 접근하면, 이것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조세정책은 기업과 시장, 국민 등 모든 경제주체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제도'다. 여기에 국민과 기업의 미래가 달려있다.
정부는 최근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로 유산취득세를 도입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자녀상속공제가 왜 뜬금없이 등장했는지, 앞으로 상속세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예측하기 어렵다.
따라서 정부가 발표한 세법개정안의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배경을 알면, 조세정책에 대한 이해 수준이 높아지고 세금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다. 또한 세법개정 방향에 대한 예측이 가능해, 주위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삶을 계획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포인트1. 꿩 대신 닭…누이 좋고 매부도 좋아(feat. 자녀상속공제)
이번 세법개정안에서 가장 주목받는 내용은 자녀상속공제 금액을 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올린 것이다. 공제금액을 한 번에 10배나 올린 것은 상당히 파격적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야당에서 부자감세라는 주장을 내세우며 정부안을 통과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가 다른 공제가 아닌, 자녀상속공제액만 인상한 것이 필승 전략이라고 평가한다. 저출산 대응, 다자녀에 유리한 세제라는 명분을 앞세운다면 부자감세 논란에 충분히 맞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상속세 인적공제는 ▲기초공제 2억원 ▲자녀·연로자 공제 5000만원 ▲미성년자 공제(19세까지 연수X1000만원) ▲장애인 공제(기대여명 연수X1000만원) ▲일괄공제 5억원 ▲배우자 공제(5억~30억원)를 적용한다.
상속인은 '기초공제+인적공제' 또는 일괄공제 5억원 중 유리한 것을 선택하면 되는데, 만약 피상속인의 자녀가 2명이라면, 기존에는 기초공제 2억원과 자녀 2명에 대한 자녀공제 1억원을 더해 총 3억원을 공제받는 것보다는, 일괄공제 5억원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했다.

하지만 정부의 개정안은 상속인의 자녀 2명이라면 각 5억원, 총 10억원의 공제와 기초공제 2억원이 적용되면서 상속재산 12억원까지는 상속세 부담이 없게 된다. 자녀가 많을수록 세 부담 측면에서 더 유리하기 때문에 저출산 시대에 맞는 세제라는 평가다.
유산취득세 도입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라는 의견이다. 유산세는 피상속인의 재산 전체에 대해 한 번에 과세하는 방식으로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이에 정부는 받은 만큼만 내는 유산취득세를 도입하겠다며 연구용역까지 맡긴 상황이지만, 결국 세법개정안에 담기지 못했다.
유산취득세가 세법개정안에 포함되지 못한 것은 상속세제 전반을 뜯어고쳐야 하는 대대적인 작업으로 쉽지 않은 데다, 거대 야당이 유산취득세 도입에 부정적이라는 점이 작용했다.
유산취득세 도입은 불발됐지만, 이와 비슷한 효과를 내는 자녀공제를 대폭 인상함으로써 유산취득세를 도입한 것과 같은 효과를 보겠다는 것이 정부의 전략이다.
이에 더해 상속세 과세기준을 올려, 서울에 아파트 1채 있어도 상속세가 나온다는 말을 쏙 들어가게 만들었다. 국세청의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체 피상속인 1만8282명 중 상속재산이 20억원 이하인 피상속인은 1만2571명으로 69%를 차지했다.
정부안이 통과한다면, 앞으로는 자녀가 2~3명 있고 배우자까지 있다면 상속재산 20억원 초반까지는 세부담이 없어지게 된다.
포인트2. 부자감세는 잠시 넣어둬(feat. 상속세 과표·세율 조정)
상속세 과세표준 구간과 세율 조정도 큰 이슈다. 정부는 2000년부터 14년 동안 유지해왔던 과표와 세율을 조정했다.
최저 과표구간을 1억원 이하(세율 10%)에서 2억원 이하(10%)로 확대하고 최고 과표구간과 세율도 개편해 기존 과표 30억원 초과(50%) 구간을 10억원 초과(40%)로 완화됐다.

야당은 정부의 세법개정안을 '초부자감세며 공격하고 있다.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은 부에 대해 근로소득세 최고세율인 45%보다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주장에 나름 반박할 논리를 세웠다. 이번 개정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재 최고 과표구간인 '30억원 초과'만 사라진다. 10억원 이하 구간까지는 기존과 비슷한 세율이 유지된다.
더구나 과표 1억원 이하 구간을 2억원 이하로 확대해 오히려 과표가 낮은 상속인의 세 부담을 줄인다는 명분도 있다.
그럼에도 야당이 초부자감세라는 공격을 이어갈 경우, 정부와 여당은 저출산 대응, 서울 소재 아파트 1채를 소유한 중산층에 대한 상속세 부담 완화 등의 카드를 출구전략으로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포인트3. 첫술에 배부르랴(feat. 유산취득세·세율·배우자)
정부 입장에서는 거대 야당을 설득해 국회를 통과시킬 수 있는 안을 만들기 위해 이런 저런 전략을 세법개정안에 담았음에도 아쉬운 점은 여전히 남아있다. ▲유산취득세 도입 불발 ▲상속세율 완화 폭 ▲배우자 상속세 면제 등이 그것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초기만 해도 유산취득세 도입에 적극적이었던 기획재정부는 최근 말을 바꿔 유산취득세를 도입해도, 저출산 기조 때문에 실효성이 크지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중에서는 거대 야당 때문에 유산취득세 도입이 어렵다고 판단한 기재부가 자녀상속공제 금액을 높이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유산취득세 도입은 응능부담(능력에 맞게 세금납부) 차원에서 합리적이라는 의견이 다수인 만큼, 정부에서 이를 완전히 포기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이다. 오히려 자녀상속공제 확대가 유산취득세로 가기 위한 전 단계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상속세 최고세율의 경우 아쉽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평균 상속세 최고세율이 26%인 점을 감안하면,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 이번에 최대주주 할증과세를 폐지하는 것으로, 최고세율 완화는 한 발 물러난 전략을 취했다는 의견이다.
배우자 상속세 과세는 이미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이혼 시에는 부부의 공동재산이라는 개념으로 증여세가 과세되지 않는데, 상속 시에는 배우자에게도 상속세가 과세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은 사회적으로 충분히 공유되고 있기 때문에 국회 논의 과정에서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해당 기사는 상속증여세 전문가인 박정수 비앤택스세무회계 세무사와 최용준 세무법인 다솔 WM 3본부 대표세무사와의 심층인터뷰를 통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