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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업본색] 신도리코 3세 향하는 절대권력

  • 2020.01.08(수) 10:00

<신도리코> ①
‘옥상옥’…시스템→SDR→㈜신도리코 ‘힘의 원천’
오너 3세 우승협, 17살 때 지배구조 최정점 위치

우석형 신도리코 회장

2020년, 올해 창립 60돌을 맞는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반세기가 훨씬 넘는 동안 단 한 번도 흑자를 놓친 적이 없다. 벌이는 차고 넘쳐 외부자금을 갖다 쓸 이유도 없다.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은 자연스런 귀결이었다.

세월이 제법 흘렀다. 시간이 흐르고 환경이 바뀌고 사람도 변하는 게 세월이다. 창업주로부터 가업을 물려받은 2세 경영자는 어느덧 3세 대(代)물림에 공들이고 있다. 준비성도 철저하다. 가업승계는 성공에 가까워지고 있다. 국내 최대 사무기기 업체 신도리코 얘기다.

도약의 기회 놓치지 않은 창업주

먹지와 등사기 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개성상인 출신 기업가 고(故) 우상기(1907~2002) 창업주가 1960년 7월 ‘신도교역’을 설립했다.

개성상업학교 출신으로 1945년 광복 후 서울에서 면포 도매상을 하다가 무역업계에 발을 들였다. 태양상사 무역부를 거쳐 일본에서 복사기를 수입·판매하는 무역업체를 차렸다. 신도리코의 출발이다.

1964년 1월 국내 최초로 복사기를 생산했다. 1967년 6월에는 판매회사 신도사무기판매(현 신도SDR)를 차렸다. 1969년 일본 사무기기 업체 리코(RICOH)와 합작을 계기로 도약의 기회를 잡았다. 신도교역에서 지금의 ‘㈜신도리코’로 간판을 바꿔 단 게 이 무렵인 1969년 12월이다.

1981년 12월 국내 최초로 팩시밀리를 생산했다. 이듬해에는 기술연구소를 설립했다. 사무자동화(OA)기기를 첨단화하며 성장가도를 달렸다. 1970년대 중반까지 복사기 시장을 독점했다. 팩시밀리도 1980년대 중반까지 약 50%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했다.

불같이 일어나던 시기, 2세 체제의 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1986년 3월 창업주의 2남2녀 중 장남 우석형(66) 회장이 가업을 승계했다. 1980년 ㈜신도리코에 입사한 뒤 기획실장, 부사장 등을 거쳐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부친은 대표이사 회장으로 옮겼다. (참고로 우석형 회장이 회장에 취임한 시기는 2002년 3월 창업주 별세 이듬해인 2003년 7월이다.)

성공에 익숙했던 2세 우석형

기대를 벗어나지 않았다. 창업주의 유산(遺産)을 기반으로 우 회장에게 성공은 너무나 익숙했다. 지칠 줄 모르는 사세 확장을 통해 신도리코를 내로라하는 중견기업 반열에 오르게 한 주역이다.

1988년 신도시스템을 시작으로 1989년 신도테크노․신도창업투자․신도컴퓨터, 1999년 신도에이스․신도하이네트(현 신도중앙판매) 등 연쇄적으로 계열을 확장했다. 1996년에는 ㈜신도리코가 증시에 상장했다.  

사업도 거침이 없었다. 2000년대부터는 디지털·네트워크 첨단 사무환경에 맞춰 사무기기는 물론 오피스 솔루션, 3D 프린터까지 사업영역을 확대했다.

현재 신도리코는 국내 사무용기기 시장에서 일본 캐논코리아, 후지제록스와 함께 80% 이상을 점유, 3각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해외시장 공략도 공격적이다. 1980년대 초부터 개시된 수출 비중은 65%(2018년)에 달한다.

신도리코의 일본 리코 지우기는 폭발 성장을 바탕으로 한 독립 의지의 표현이다. 2007년 10월 ㈜신도리코 소유지분에 대한 공동보유 관계를 해소했다. 일본 리코와 손을 잡은 지 38년만이다.

신도리코는 현재 계열사가 15개사에 이른다. 주력사 ㈜신도리코를 비롯해 국내 계열만 10개사다. 중국․베트남․홍콩에 5개 생산공장 및 판매법인도 두고 있다. 매출은 6000억원대에 이른다. 

‘3무(無) 경영’ 원칙도 철저하다. ‘3무’란 무적자․무차입․무어음을 뜻한다. 탄탄한 경영으로 적자를 보지 않는다. 무리하게 욕심을 부려 차입을 하지 않는다. 거래 상대방에게 제때 현찰로 대금을 지급해 신용을 지킨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도 지켜졌다.

변함없는 지배구조 뼈대 ‘옥상옥’

신도리코는 3세 체제를 준비 중이다. 밑그림은 다 짜여졌다. 올해 나이 27세, 비록 본격적인 경영수업 단계를 밟기 시작했다는 소리는 안들리지만, 지분 승계는 한참을 앞서가 있다. 우 회장이 무소불위의 지배력을 갖게 한 힘을 고스란히 옮기고 있다.

2대 경영자 우 회장은 주력 계열사 ㈜신도리코의 단일 최대주주가 아니다. 2대주주로서  지분이 11.70%다. 부인․자녀 등 일가(15명)를 합해도 20%가 안 된다.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봐도 별 다를 게 없다. 변함없이 직접 지분 11.70%를 비롯해 19.49%가 일가 소유였다.

예나 지금이나 ㈜신도리코의 단일 1대주주는 관계사 신도에스디알(SDR)이다. 신도SDR 상층에는 신도시스템이 자리 잡아 왔다. 신도시스템→신도SDR→㈜신도리코로 연결되는 ‘옥상옥(屋上屋)’ 구조는 오랜 시간 신도리코를 관통하는 지배구조의 뼈대다.

즉, 2세 체제 출범 이래 우 회장의 절대권력은 신도시스템과 신도SDR로부터 나왔다. 직접 소유지분을 포함, 자신의 영향권(65.73%) 아래 있는 신도시스템(60.61%)→신도SDR(36.38%)→㈜신도리코 수직출자구조가 지배구조의 핵심 축이었다.   

데자뷔…우석형․우승협 최상단 자리교체

결국 신도리코 2세 지분승계의 경우 늦어도 우 회장의 나이 40대 중반 때 일찌감치 마무리된 것을 알 수 있다.

일례로 1999년 말 우상기 창업주의 신도SDR 지분은 1.4%에 불과했다. ㈜신도리코 지분은 0.30%가 전부였다. 2002년 3월 별세 이후 ㈜신도리코 지분은 부인 최순형(95)씨와 자녀, 사위, 외손자 등 일가 7명에게 상속됐다. 당시 시세로 17억원어치 정도다.

우 회장은 현재 ㈜신도리코(2019년 12월 대표 퇴임․등기임원 유지) 외에도 2곳의 이사회 멤버로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바로 신도시스템과 신도SDR이다. 지배구조 측면에서 신도시스템과 신도SDR이 갖는 무게감이 엿보인다. 

신도시스템은 부인 장순희(63)씨도 2013년 3월까지 등기임원으로 활동했다. 신도SDR의 경우는 모친 최순형씨가 93세 때인 2018년 9월까지 사내이사직을 갖고 있었다. 

(특별하다. 신도리코에서 최순영씨는 그런 존재다. 1970년대 중반부터 ㈜신도리코의 경영에 참여했다. 창업주 별세 이후에도 2016년 3월까지 이사회 멤버로 자리를 지켰다.)

데자뷔다. 어느덧 계열 지배구조의 가장 높은 곳에는 우 회장의 2남1녀 중 외아들 우승협(27)씨가 자리잡고 있다. 2010년 조용했지만 대대적이었던 물밑 작업에서 비롯됐다. 우승협씨 나이 17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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