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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정국 속 고개드는 국세청법, 이번엔 정말 제정될까?

  • 2025.01.08(수) 14:46

강민수 국세청장 인사청문회 때 국세청법 '재검토' 언급
국세청, 연구용역 마무리 단계…이달 말 결과 나올 듯

국세청은 1966년 개청 이후 '권력기관' 이미지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이는 국세청이 조세 부과와 세무조사라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제대로 사용하면 문제없겠지만 국세청이 정치적·비리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사례가 밝혀지면서 국세청이 가진 권한에 대해 의문이 제기됐다. 논란의 정점을 찍은 것은 1997년 15대 대선 때 일어난 '세풍사건'으로, 당시 이석희 국세청 차장이 불법 대선자금 모금 사건에 연루된 혐의를 받았다. 이를 계기로 국세청 조직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국세청의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등장한 것이 '국세청법(1999년 제정 추진)'이었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여러 차례의 법안 발의·폐기를 반복했던 국세청법이 긴 공백을 깨고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한동안 잠잠했던 국세청법이 다시 논의되고 있다. 국회에서 국세청법 제정에 적극 나섰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국세청 내부에서 국세청법 제정을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현재 국세청은 검찰, 경찰, 국정원, 감사원 등 여타 권력기관과 달리 개별조직법이 없어 국세청장의 임기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국세청장이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며 정치적 세무조사를 한다는 의혹을 끊임없이 제기했다.  

국세청은 사단법인 한국세법학회를 통해 '국세청법 제정 필요성'을 에 대한 연구용역을 발주, 이달 말 연구용역을 마무리할 계획인 것으로 확인됐다. 국세청 관계자는 "국세행정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국세청 내부에서 이런 움직임을 보인 건 사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국세청법 제정을 추진했던 1999년 이후 처음이라는 전언이다.

최근 국세청법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지난해 7월 열린 강민수 국세청장의 인사청문회였다. 이 자리에서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세무조사 등과 관련해 강 후보자의 공정성, 정치적 중립성 문제가 계속 제기되고 있다"며 "의지 못지않게 이를 현실화할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진 의원은 지난 2018년 당시 국세청 국세행정개혁TF가 권고한 국세청법 제정을 언급하자, 강 국세청장은 "지금까지 역대 국세청법 제정에 대해 국세청이 유보적인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충분히 긍정적으로 검토할 때가 됐다"고 답했다.

국세청이 발주한 연구용역의 계약일은 지난해 8월 12일로, 강 청장의 취임일이 지난해 7월 22일인 것을 감안하면 굉장히 빠른 시간 내에 이뤄졌다. 

그렇다고 연구용역의 결과물이 곧바로 정책 도입의 근거로 쓰인다고 하기는 어렵다. 국세청이 국세청법 제정 작업의 주무부처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연구용역 결과물을 어떤 식으로 활용할지는 추후에 결정될 문제"라고 말했다. 

발의·폐기만 반복 중인 국세청법

1997년, 국세청 역사에 있어서 가장 부끄럽고 치욕스러운 해다.

세금을 흥정 대상으로 삼아 기업들로부터 정치자금을 긁어모은 이른바 세풍 사건이 터졌는데, 당시 이석희 국세청 차장이 기획자의 한 사람으로 지목됐다. 징세권 악용의 극단을 보여준 사례로, 자연스럽게 세정에 대한 납세자들의 불신으로 이어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세청은 개혁 대상이 됐고, 사건이 무마되던 1999년에 이른바 '국세공무원법'이 태동했다. 

당시 안정남 국세청장의 주도 하에 만들어진 이 법에는 국세공무원을 특정직으로 전환하고, 국세행정고시(5급)를 신설하는 내용이 담겼다. 비리 행위가 적발됐을 때 처벌을 강화하는 것도 함께였다. 

하지만 국세공무원의 특정직 전환에 대한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등 관계기관의 반대로 제정 의지가 꺾였다. 

지난 2006년 7월, 전군표 국세청장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국세청법 제정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곧바로 행동으로 옮겨지진 않았고, 이듬해에 국회의원 주도로 국세청법 제정이 추진됐다.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엄호성 의원이 대표 발의한 안이었는데, 1999년 국세공무원법과의 차이점은 존재했다. 대표적인 것이 '국세청장 임기제'였다.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기관을 운영할 수 있도록 '2년 단임제' 도입을 꺼낸 것이다.  

2007년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국세청장 임기제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국세청법의 제정에 대한 기대는 높아졌다. 하지만 대선 분위기에 휩쓸려 국회에서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18대 국회가 개원(2008년 4월)하면서 결국 폐기됐다. 

국세청법이 재등장한 건 2013년이었다. 정성호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안으로, 과거의 국세청법과는 다른 시각으로 접근했다.

국세청장 임기제(2년 단임) 도입이 핵심이지만, 외부(기재부 산하 국가세무위원회)의 힘을 빌려 인사·조직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려는 목적이 더 강했다. 이 안은 그해 정기국회에서 여당(자유한국당)의 반대로 무산 위기를 맞았고, 이듬해 같은 당 조정식 의원이 보완된 국세청법을 재차 발의했지만 여야 간 갈등으로 장기간 파행을 거듭하며 논의 테이블에 오르지 못했다. 

2017년 11월, 국세청 산하 국세행정개혁TF는 과거 정치적으로 문제가 된 세무조사 사례를 발표했다.

정치적 논란이 된 총 62건의 세무조사를 점검한 결과, 2008년 태광실업 세무조사 등 5건의 세무조사에서 국세기본법상 중대한 조사권 남용이 의심된다고 했다.

이듬해 1월 TF는 국세행정 개혁 권고안을 확정하며, 국세청법 제정 검토를 주문했다. 국세청 스스로 개혁에 나서진 않았지만, 당시 여당인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세청법을 발의하며 관심이 집중됐다. 그러나 결과는 폐기, 이후에도 정치적 세무조사 논란은 여럿 있었지만 국세청법 제정 논의로 이어지진 않았다. 

국세청법 찬반 쟁점은 

국세청법이 생긴다면 국세청의 중립성을 보장할 수 있을까?

국세청법 제정에 따른 효과가 있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는데도, 국세청법은 폐기를 거듭했다.

그 이유는 지난 2018년 당시 전진호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문위원이 제출한 검토보고서(심 의원 발의안)를 통해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다. 

국세청법 제정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국세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청렴성을 제도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전 위원은 현행 제도가 세무조사권 남용을 엄격히 금지하지만, 이를 위반한 경우에 대한 제재조항이 없어 실효성이 낮다는 점을 지적했다. 

국세청법 제정을 찬성하는 쪽에선 국세청장 임기제를 주요 포인트로 지목한다.

전 위원도 "임명권자인 대통령이나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이 강화되어 직무수행 과정상 정치적 중립성·독립성의 확보가 용이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런 이유에서 검찰총장·경찰청장·감사원장의 경우 법률로 임기를 보장한다.

다만 임기제가 적용되는 검찰총장·경찰청장이 보장된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한 사례가 있다는 점에서, 임기제로 정치 중립성이 확보됐다고 보기 힘들다는 시각도 있다.

국세청법 제정의 가장 크게 발목을 잡는 건 국세공무원의 특정직 전환이다.

①국세공무원의 전문성을 높이고 ②이는 납세서비스의 질을 개선하며 ③결과적으로 원활한 납세협력을 통한 세수 증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국세청법이 제정될 경우 관세를 징수하는 관세청 등도 자체 조직법을 추진할 우려가 나오면서 형평성 문제가 제기됐다. 

전 위원은 "국세공무원에게만 인사관리나 보수상의 특례를 적용할 경우 유사직무를 수행하는 지방세공무원, 관세공무원 등과의 형평성 문제가 야기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당시 행안부도 정부조직법과 별도로 행정조직의 설립 근거 법률을 제정하는 것은 정부 조직의 통일적인 운영에 어려움을 줄 가능성이 있다며 반대 의견을 낸 바 있다. 

국세청법 제정, 계속 시도되는 이유는

국세청은 매년 자체적으로 여러 쇄신안을 내놓고 있지만, 국세공무원들이 연루된 크고 작은 비리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7월,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발표한 '납세의식과 납세순응행위 결정 요인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성인 남녀 4000명을 조사한 결과, 국민 21.8%는 국세청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보통이라는 응답은 42.9%였다.

신뢰한다는 35.2%의 응답률을 보였다. 국민 100명 중 35명만이 국세청을 신뢰한다는 의미다. 설문조사를 보듯, 국세청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정치적 중립성·청렴성을 확보하지 못한 기관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른 정부 기관보다 국세청에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는 이유는 본연의 업무인 징세가 국민의 재산권과 직접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야당에서는 강 국세청장이 서울지방국세청장으로 있던 시절 실시된 12곳(MBC, 대형입시학원 등)의 세무조사를 두고 정치적 조사라고 비판하면서, 국세청의 징세권 행사에 대한 이중, 삼중의 체크가 가능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단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국세청법 제정과 관련해선 어느 정도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신호가 나오고 있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세무조사 남용을 막겠다는 의지를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국세청도 사실상 법안 제정에 찬성하고 있는 모양새다. 

정성호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9월 택스워치와의 인터뷰에서 "국세청법 제정을 추진하고 싶지만, 정부가 묵묵부답"이라며 "이 문제는 대통령이 결단해야 한다. 정부조직은 행정부에서 만드는 것이 맞지만, 국회가 국세청법을 발의하면 정부도 같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2013년 국세청법 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정 의원은 "국세청법은 국세청장의 임기를 2년 보장하는 내용이 있는데, 이렇게 해야만 세무조사가 정치권의 정적탄압 용도로 활용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동안 추진 동력이 약했던 국세청법은 최근 정치적 상황이 급변하면서, 제정 논의에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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