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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를 몰라 수천억 상장이익을 놓치다

  • 2024.07.18(목) 17:00

[프리미엄 리포트]김수헌 MTN 기업경제센터장

기업을 경영할 때 회계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경영자나 재무담당자가 회계를 잘 모르고 대충 처리했다가 기업이 위기 상황에 처하기도 하고, 거액의 손실을 입기도 하죠. 회계가 기업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지 실제 사례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영업활동에서 이익을 많이 낼수록 부채가 증가하고 순손실이 커지는 일이 있을까.

기업이 이런 신기한 재무제표를 만들어야 할 때가 있다. 바로 전환사채(CB) 때문이다. 발행기업과 투자자가 전환사채 회계처리를 둘러싸고 거액의 소송을 벌이는 일도 최근 있었다. 

전환사채는 회사채에 주식전환권이 내재된 이른바 '복합금융상품'이다. 예를 들어 상장회사 A가 액면가 100만원 전환사채(연 이자율 5%, 만기 3년, 전환가격 1만원)를 발행했고, 투자자 B가 인수했다 하자. 주가가 1만원을 크게 웃돌면 B는 투자원금을 포기하는 대신 전환권을 행사해 A사 신주 100주를 받으려 할 것이다.

만약 주가가 5000원으로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대부분의 전환사채는 주가가 하락하면 그만큼 전환가격도 하향조정하는 조건으로 발행된다. 문제는 이렇게 발행된 전환사채에 내재된 전환권의 가치를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 적용기업들은 파생금융부채로 처리해야 한다는 점이다. 

A가 발행한 전환사채에는 두가지 의무가 붙어있다. 사채금액을 갚아야 할 의무, 그리고 투자자가 원할 경우 주식으로 전환해줘야 할 의무다.

발행시점에 주채무(사채상환의무, 미래의 사채 원리금을 현재가치로 할인한 금액)를 측정했더니 90만원으로 산출되었다고 하자. 그렇다면 나머지 10만원(100만원-90만원)은 전환권(파생금융부채)가치가 된다. 전환권은 주가가 오를수록 커진다.

다시 말해 파생금융부채가 증가하게 되고, 그 증가액만큼 A사는 파생금융부채평가손실을 인식해야 한다. 이는 손익계산서에 영업 외 손실로 반영된다. 주가 상승폭이 클수록, 다시 말해 기업가치가 크게 증가할수록 순이익이 대규모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커진다. 사람들은 이런 회계처리를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지난 2022년 한국회계기준원이 코스닥상장 기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많은 기업들이 전환사채나 신주인수권부사채 같은 복합금융상품의 회계처리를 가장 어려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상장기업들이 주로 사용하는 일반기업회계기준(K-GAAP)에 따르면 전환사채 전환권은 자본으로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상장기업에 적용되는 K-IFRS에서는 전환가격 조정(리픽싱) 조건이 붙어있는 경우 전환권은 부채(파생금융부채)로 처리하라고 한다. 이 때문에 기업은 경제적 실질과 상관없는 파생상품평가손실을 당기손익에 반영해야 한다. 

최근 라이노스자산운용과 게임회사 스마일게이트RPG간 1000억원대 소송은 바로 이 전환사채 회계처리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라이노스는 2017년 당시 적자기업 스마일게이트RPG가 발행한 200억원 전환사채를 인수했다. 당기순이익이 120억원을 넘으면 IPO(기업공개)를 해서 상장한다는 약정이 붙어있었다. 

이후 회사 실적은 비약적으로 좋아졌다. 2021년 매출액 4898억원, 영업이익 3055억원, 당기순이익 2290억원을 기록했다. 라이노스는 2022년 들어 회사측에 IPO 추진을 요청했다. 회사는 상장규정에 따라 K-IFRS로 회계기준을 변경했고, 지정감사인이 2022년 결산감사를 진행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로스트아크 게임 흥행대박으로 영업이익이 급증하면서 회사 가치는 전환사채 발행시점 약 2000억원에서 5조원 이상으로 상승했다. 당연히 전환권 가치 또한 크게 증가했다. 2022년 결산 결과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7369억원과 3641억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회계기준이 K-IFRS로 바뀌면서 전환권에서 파생상품평가손실 5357억원이 발생하였다. 당기순이익은 1426억원 적자를 냈다. 

스마일게이트RPG측은 "약정상 당기순이익 120억원 이상인 경우에만 IPO를 추진하게 되어있다"며 상장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다. 라이노스측은 "전환권에서 발생한 파생상품손실은 회계적 평가손실일 뿐이며 실질적으로는 막대한 이익을 냈으므로 IPO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사측은 약정의 명문 규정을 들이대며 응하지 않았다.

결국 라이노스측은 1000억원대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K-IFRS 회계를 라이노스측이 잘 알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당기순이익은 파생상품평가손실을 제외한 수치로 한다'는 조항을 넣었을 것이다. IPO는 예정대로 진행되었고 라이노스는 수천억원의 상장차익을 얻었을 가능성이 높다. 

☞김수헌 센터장은?
고려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중앙일보, 이데일리 기자 생활을 거쳐 글로벌모니터 대표를 지냈다. 회계 분야 베스트셀러 '하마터면 회계를 모르고 일할 뻔 했다'의 저자로서 삼프로TV 언더스탠딩 채널에서 2년 동안 기업과 자본시장 이슈를 해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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