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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경로우대 공제']① 5년전 기습처리 비화(祕話)

  • 2014.02.21(금) 09:30

기초노령연금 대안으로 공제 축소…"노인들은 돈으로 주자"
여당 아이디어 제시→정부 수용…법안 2주 만에 통과

박근혜 정부가 1년간 공들여 온 조세개혁이 서서히 윤곽을 잡아나가고 있다. 제목만 있고 내용은 없었던 미래의 세금 제도가 본격적인 설계 단계에 돌입한 것이다.

 

첫 설계도면에는 저출산과 고령화 시대를 대비해 소득세 구조를 다시 짜는 방안이 담겼다. 자녀가 많을수록 세금 혜택을 늘리는 대신, 경로우대에 대한 공제 규정은 폐지하는 내용이다.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급격한 세수 부족 현상을 막기 위한 취지지만, 당장 나이 많은 부모를 부양하는 직장인들은 연말정산에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과거 경로우대 공제의 발자취와 조세개혁 진행 상황, 개편 후 달라질 모습을 세 편에 걸쳐 다뤄본다. [편집자]

 


지난 1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비공개로 개최한 조세개혁소위원회에서는 '저출산·고령화 대책을 위한 조세개혁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전병목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은 고령화에 강건한 조세구조를 확립해야 한다는 전제 하에 경로우대 공제 폐지를 제안했다. ☞[단독] 연말정산서 '경로우대 공제' 폐지 검토

 

경로우대 공제는 직장인이 연말정산 과정에서 70세 이상의 가족을 부양할 경우 100만원의 공제 혜택을 추가로 부여하는 제도다. 연간 3000억원 내외의 세수가 지원되는데, 고령자가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에서 '세금 퍼주기'를 중단하자는 것이 조세개혁안의 요지다.

 

정부는 서울올림픽 직후였던 1988년 말 세법을 개정해 1989년부터 65세 이상 부양가족 1인당 36만원의 경로우대 공제를 도입했다. 이후 공제 금액은 물가 상승에 맞춰 계속 올랐고, 2008년에는 공제 금액이 65세 이상 100만원(70세 이상은 150만원)으로 정점을 찍었다.

 

◇ 감세의 물결 속, 경로우대만 '싹둑'

 

이명박 정부 출범 첫 해였던 2008년 말에는 소득세율과 법인세율을 나란히 인하하는 등 과감한 감세(減稅)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양도소득세나 종합부동산세, 개별소비세까지 세부담 완화 방안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감세의 물결이 온 나라를 뒤덮었지만, 경로우대 공제는 슬그머니 축소됐다. 국회는 2009년부터 경로우대 공제를 받을 수 있는 제한 연령을 65세 이상에서 70세 이상으로 높였고, 최대 150만원까지 가능했던 공제 폭도 100만원으로 줄였다.

 

애초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세제개편안에도 그런 내용은 담겨있지 않았다. 경로우대 공제를 줄이기 위한 국회의 논의는 즉흥적이면서도 은밀하게 진행됐고, 법안은 신속하게 처리됐다. 직장인들은 경로우대 공제가 줄어든 사실을 1년 후 연말정산 신고서를 작성할 때 비로소 체감할 수 있었다.

 

◇ "경로우대 없애자 이거지"

 

국회와 정부는 처음부터 경로우대 공제를 줄이려고 하진 않았다. 원래 기재부가 국회에 가져간 방안은 경로우대 공제 대상에 기초노령연금 대상자를 제외하자는 내용이다. 2009년부터 기초노령연금 수혜자 범위를 65세 이상 노인 중 60%에서 70%로 확대하면서 늘어나는 재원을 보조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기초노령연금은 노인에게 주는 것이고, 경로우대 공제는 고령자를 부양하는 직장인 자녀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2009년 말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이었던 민주당 백재현 의원은 "아들 돈 걷어가지고 노령연금 주자는 얘기"라며 "근로자 혜택을 빼앗는 반감 효과가 있기 때문에 정부안은 철회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기재부가 입장을 고수하자 조세소위원장인 한나라당(現새누리당) 최경환 의원이 중재에 나섰고, 결국 경로우대 공제 제도가 도마에 올랐다. 다음은 2008년 12월1일 비공개로 열린 조세소위 회의록이다.

 

▲최경환 소위원장 "(70세 이상 150만원 공제를 없애고)65세 이상 100만원만 해서 남겨두면 어때요?"
▲나성린 의원(한나라당) "그게 하나의 타협안이 될 수 있는데, 70세 이상 150만원은 필요없지."
▲김재경 의원(한나라당) "결국 큰 흐름은 국가가 노후보장을 점차 강화하는 추세고, 사실 경로우대 이것 종국적으로는…"
▲백재현 의원(민주당) "경로우대를 없애자 이거지."
▲김재경 의원 "우리가 내놓고 그 이야기는 못하지만."
▲윤영선 기재부 세제실장 "노인들은 돈으로 주는 게 제일 필요하고요."

 

기초노령연금 대상자를 경로우대 공제에서 제외하자는 정부안 대신 공제 혜택을 줄이는 타협안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나온 결론은 현재의 경로우대 공제가 된 '70세 이상 100만원' 규정이었고, 기재부도 마치 기다렸다는 듯 타협안을 받았다.

 

▲진수희 의원(한나라당) "평균수명도 연장되고 하니까 '70세 이상 100만원' 이렇게 해서…"
▲김동수 기재부 제1차관 "그러면 70세 이상 100만원을 한번 저희가 검토하겠습니다."
▲나성린 의원 "기초노령연금도 드리고 기본공제도 높아졌고, 세율도 낮아졌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세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것은 앞으로 차차 없어져야 될 항목이지만, 바로 없애기는 뭐하니까 70세 이상 100만원으로 하겠다…"
▲김동수 기재부 제1차관 "알겠습니다."

 

국회와 정부가 타협안을 만들어냈지만, 조세저항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소위 위원들은 고령자들이 항의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경로우대 공제 축소로 인해 실제 세부담이 늘어나는 쪽은 직장인이었다. 애초부터 타깃을 잘못 설정한 것이었다.

 

▲최경환 소위원장 "한꺼번에 다 없애 버리면 대한노인회 이런 데서 와서 시끄럽다니까요. 노령화 사회인데 65세 이상이야 뭐. 다 65세 이상이니까."
▲김재경 의원 "그러니까 70세 이상 150만원을 그대로 살리는 방안과 100만원으로 낮추는 방안 정도에서 한번 논의해 보시지요."
▲윤영선 세제실장 "위원장님. 70세 이상 100만원 하더라도 계속 커지기 때문에 세출 쪽의 단위가 큽니다."
▲최경환 소위원장 "노인회에서 이의를 제기하면 기초노령연금을 계속 늘려 나가기 때문에…"
▲김재경 의원 "거기에 맞춰서 통계를 정리해 그런 분들이 와서 말씀하실 때 우리도 설명 좀 할 수 있게…"
▲최경환 소위원장 "그러면 70세 이상 100만원. 잠정적으로 그런 안 쪽으로 하면 어때요? 그 정도면 괜찮겠습니까?"

 

이날 경로우대 공제에 대한 조세소위원회의 논의는 그렇게 마무리됐다. 나흘 후인 12월5일 기재위 전체회의에서 의결하고, 다시 일주일 후인 12일에는 국회 본회의 관문을 통과했다.

 

경로우대 공제 축소 아이디어가 나온 시점부터 법안 통과까지 2주가 채 걸리지 않은 셈이다. 이듬해 1월에 공포된 소득세법 중 경로우대 공제 규정 '70세 이상 100만원'은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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