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1 아이가 생기지 않아 고민인 30대 후반 김 대리는 난임시술을 받으러 다녔다. 난임시술을 위해서는 5~8회 병원을 방문해야 하기 때문에 회사에 반차나 연차를 신청했지만, 사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임신 실패 가능성도 높은 데다, 임신할 경우 퇴사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굳이 회사에 알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연말정산 과정에서 난임시술비용에 대한 세액공제를 신청하면서 부서 내 사람들이 알게 됐고, 뒤에서 수군대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사례2 이 대리는 지난해 부인과 이혼하고, 아이를 홀로 키우고 있다. 부인의 불륜으로 이혼했던 이 대리는 이혼 사실을 회사에 알려 구설에 오르내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연말정산에 부양가족을 적어내야 하는 부분에 부인을 제외하고, 한부모 공제 신청을 하자니 회사에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닐까 두려워졌다.
#사례3 A정당 당원인 최 부장은 회사 대표가 B정당을 지지하는 것을 알고 자신의 정치 성향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A정당에 꼬박꼬박 후원금(당비)만 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대표님이 "강 부장, 정치후원금 대체 어디다 내는 거야?"라고 물어와, 식은 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정치후원금 영수증에는 정당이나 정치인 이름이 나오지 않지만 연말정산 과정에서 정치후원금을 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회사 경영지원부에서 대표에게 보고한 것이다. 강 부장은 A정당을 굉장히 싫어하는 대표님에게 차마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
연말정산 시즌이 다가왔다. 누군가에는 '13월의 보너스'로 기대가 될 수 있겠지만, 이혼이나 질병, 난임시술, 정치후원금, 종교 기부금 등 꽁꽁 숨기고 싶은 나만의 비밀을 회사에 꺼내보여야 하는 근로자들은 난감할 수밖에 없다.
연말정산은 지난 1년 간의 근로자 본인의 경제활동을 제출하고 냈던 세금을 돌려받는 과정이다. 자연스럽게 내 부양가족 등 신상명세나 질병, 종교, 정치후원, 소비패턴, 교육비, 자가 소유 여부 등 모든 정보를 제공할 수밖에 없다.
이런 개인정보는 철저하게 지켜져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소규모 회사에서는 이런 것들이 잘 지켜지지 않는 사례가 많다. 근로자가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쓰는 것을 눈치주는 회사에서 난임시술을 한다고 떳떳하게 밝힐 수 있는 용감한 직장인이 얼마나 있을까.
내가 냈던 세금을 돌려받는 일인데, 이런 불합리한 상황을 견뎌야만 하다니 너무 억울하지만 그래도 방법은 있다.
STEP1. 간소화자료 일괄제공에 동의하지 마세요!
국세청에서 새로운 서비스로 홍보하는 것 중 하나가 '간소화 자료 일괄제공 동의' 서비스다. 근로자가 동의를 했다면, 연말정산 간소화 자료를 근로자가 직접 다운로드 받아 회사에 제출하지 않아도 국세청에서 직접 회사에 제공하는 서비스다.
회사나 근로자 모두 자료 제출이라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칠 필요 없는 좋은 서비스이지만, 회사에서 내 개인정보를 아는 것이 싫다면 신청하지 않아야 한다. 이번 연말정산의 경우 지난해 11월 30일까지 근로자가 간소화자료 일괄제공 서비스에 동의 신청을 했어야 하며, 올해 1월 14일까지 동의 여부를 수정할 수 있었다.
동의를 했다가 마음이 바뀐 근로자의 경우 지난 14일까지 다시 미동의로 신청하면 국세청에서 회사 자료를 제공하지 않는다. 이미 신청을 하고, 14일까지 수정하지 못했다면 안타깝지만 자료가 이미 회사로 넘어간 상태다.
올해 11월(내년 연말정산)에는 이를 주의해 일괄제공 서비스에 동의하지 않아야 한다.
STEP2. 5월 종합소득세 신고 때, 정기신고 하세요!
회사에서 연말정산 자료를 제출하라고 한다면, 5월에 개인적으로 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간단하다. 하지만 이마저도 회사에 말하기 껄끄럽다면 작년에 신고했던 부양가족 등은 그대로 놔둔 채 신용카드 등 크게 문제되지 않는 것만 제출하는 시늉만 하자.
경우에 따라 세금을 돌려받는 것이 아닌, 토해내야 할 수도 있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5월 종합소득세 신고 기간에 정기신고를 하면 다 돌려받을 수 있다. 1~2월에 대충 연말정산한 것을 5월에 제대로 정산한다고 생각하면 쉽다.
종소세 신고기간은 보통 5월1일부터 31일까지다. 이 기간에 홈택스(www.hometax.go.kr)에 들어가 '종합소득세 신고>정기신고'를 클릭하면 된다.
이 때 유의해야 할 점은 경정청구와 헷갈리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2023 귀속연도에 대한 연말정산은 '정기신고'이며, 2018~2022 귀속연도에 대한 연말정산은 경정청구이다. 경정청구는 최대 5년 전에 한 세금신고에 대해 정정하는 것이다. 2023 귀속연도에 대한 연말정산은 5월에 진행 중이기 때문에 정기신고로 봐야 한다. 근로자 입장에서는 '연말정산=소득세 신고'이기 때문에 '정기신고'를 한다고 이해하면 쉽다.
STEP3. 소득·세액공제 수정하고, 증빙서류 업로드!
홈택스에서 '정기신고'를 클릭해 주민등록번호 항목을 조회하면 납세자 기본정보가 나타나는데, 이 때 '연말정산 불러오기' 클릭하면 근로소득 지급명세서가 보인다. 이를 선택한 다음 주소지와 전화번호를 입력하면 근로소득신고서 입력화면이 나온다. 여기서 부양가족 등 인적공제 항목을 수정하면 된다.
이혼 등의 부양가족 변경이 있다면 이 과정에서 수정하면 된다. 이후 연말정산 간소화 자료를 불러와 재직기간에 해당하는 월을 체크해 신고서를 작성하면 된다. 기본공제 등은 재직기간과 상관없이 공제가 가능하지만, 신용카드 사용액, 의료비, 교육비 등 특정 항목은 재직기간 중 지출한 것만 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유의해야 한다. 계속 근무 중인 근로자라면 상관없지만, 중도퇴사자라면 이 부분을 잘 살펴서 신고해야 한다.
회사에 알리기 싫은 질병이나 정치후원금, 종교 기부금 등은 이 때 입력하면 된다.
간소화서비스에서 조회되지 않는 자료는 수동으로 입력한 뒤, 해당 자료를 사진을 찍거나 스캔을 해 파일을 업로드 하면 된다. 이후 연말정산 환급을 받을 계좌를 입력한 뒤 신고서를 제출하면 된다.
유의해야 할 점은 지방소득세 신고도 꼭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근로자가 내는 근로소득세에는 지방소득세 10%도 포함돼 있다. 연말정산 과정에서 지방소득세 신고를 누락한다면 환급받을 세액의 10%는 돌려받지 못하게 된다.
홈택스에서 신고서 작성을 완료하면 자동으로 지방소득세 신고 화면이 뜨게 되는데 이 때 지방세 신고·납부 홈페이지인 위택스로 이동해 안내에 따라 신고하면 간편하다.
이렇게 하면 대략 한 달 후에 계좌로 연말정산 환급금이 들어오게 된다.
STEP4. 종소세 신고도 찜찜하다면…경정청구가 답!
근로자가 개인적으로 5월에 연말정산 신고를 한다면, 회사에서 이를 알 방법은 없지만 부양가족의 경우 내년 연말정산 과정에서 드러날 수도 있다. 주민등록상의 변화는 연말정산 간소화 자료에서 자동으로 인식해 신고서에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싫은 근로자라면 추후 경정청구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2023 귀속연도 연말정산 경정청구는 종소세 기간이 지난 5월 이후부터 가능하다. 최대 5년 전까지는 경정청구가 가능하기 때문에, 조만간 퇴사할 예정이라면 속 편하게 퇴사한 이후에 경정청구를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