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 고소당했습니다.
재산과 관련된 소송은 부자들만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네요. 그냥 새로운 가정을 꾸린 게 죄였을까요?
저희 집은 재혼가정입니다. 남편과 전처 사이엔 아들 하나가 있어요. 남편은 재혼한 뒤로는 저희 가정에 집중하며 살았죠. 딸 하나를 낳고 잘 살았습니다.
재혼한 뒤로 전 가정과 다툼이나 불화는 없었냐고요?
불화라기보다는 서로 관심이 없었다고 생각해요. 전처와 아들은 오래전 외국으로 가서 살고 있었거든요. 남편이 전 가정에 쌓아놓은 감정이 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남편은 몸이 약한 사람이었어요. 남편이 병석에 누워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 아들이 생각나더군요. 상속에 대해서는 미리 합의를 해야 남편이 세상을 떠나도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껄끄러운 감정이 아예 없진 않았지만, 그들과 만나 남편의 재산에 대해 법정상속분대로 공평하게 나눠갖기로 합의했습니다. 민법에서는 배우자와 자녀가 1.5대 1의 비율로 재산을 가져간다고 규정되어 있더군요. 말하자면 남편의 재산을 제가 40%가량, 제 딸이 30%가량, 전처 사이에 낳은 아들이 30%가량 나눠갖기로 합의한 겁니다.
#그날의 상속재산분할협의서
"피상속인(재산을 물려주는 사람)의 상속재산 3억원을 각 상속인의 상속지분비율대로 나누어 가지도록 협의한다."
그렇게 문제없이 협의가 끝났고, 오랜 시간 투병 끝에 남편은 세상을 떠났어요. 온전히 남편의 죽음을 애도할 수 있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평화로운 나날이 깨진 건 소장이 날라오면서부터였어요. 그날부터 전 피고가 되어 죄인이 된 것만 같았습니다.
#어느 날 받은 소송장
"피상속인이 피고인의 딸에게 아파트 매매 대금을 증여하였고, 피고에게는 대출 상환금을 증여했다. 이로써 원고들의 유류분에 부족분이 생겼으므로 그 부족분을 반환할 의무가 있다."
도대체 뭘 돌려달라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변호사에게 상담을 받으니 남편의 아들이 제 딸이 결혼할 때 신혼집 대금으로 증여받은 2억원 가량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겁니다. 제가 증여받은 대출상환금에 대해서도요.
유류분은 재산을 상속받지 못했을 때 법정상속분의 50%만큼 보장받을 수 있는 제도라고 해요. 다만 증여받은 재산이 있다면 이를 더해서 최종 유류분액을 산정하도록 되어 있다고 하네요. 간단히 말하자면 남편의 아들은 증여받은 2억원 가량에 대해서도 나눠갖는 것이 맞다고 유류분 청구를 한 거죠.
남편이 저희에게만 증여해 준 것은 서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 하더라도 몇십 년 동안 남편과 함께 살고 병간호까지 한 건 저인데 제가 왜 죄인이 되어야 하는 걸까요.
#법원의 판단
"유류분 제도는 법정상속분의 일정 비율을 유류분으로 산정해 유족의 생존권을 보호하는 데에 목적이 있습니다. 피고가 망인(사망한 남편)과 몇십 년간 결혼생활을 유지해왔다는 점, 원고가 외국에 살면서 망인과 교류가 없었던 점, 말년에 병원비와 장례비를 피고가 모두 부담한 점을 보았을 때 증여받은 재산이 공동상속인들과의 관계에서 공평을 해친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유류분 부족분은 없습니다."
법원은 저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제가 배우자로서 남편과 평생 함께 경제 기반을 이뤄왔다는 점을 봤을 때, 남편의 증여는 배우자에 대한 부양의무이자 노력에 대한 보상이라고 했어요.
비록 재판에서 이기긴 했지만, 이번 일로 정말 사람이 무섭고 돈이 무서워졌네요.
◆유류분 제도
우리나라 민법은 상속인(재산을 물려받는 사람)이 재산을 승계 받지 못하는 문제를 막기 위해 최소 상속분을 보장해 주는 유류분 제도를 두고 있다.
현행 민법에 따르면 배우자와 자녀의 법정상속분은 각각 1.5대 1이다. 배우자나 자녀는 법정상속분의 50%를 유류분으로 보장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자녀만 두 명이고 피상속인(재산을 물려주는 사람)이 남긴 총재산이 4억원이라면 법정상속분은 각각 2억원이고 유류분은 1억원이다.
유류분은 상속 시점의 재산에서 상속인이 사망하기 전 1년간 증여한 재산을 더하고, 채무를 뺀 금액을 기초로 계산한다. 유류분으로 상속받은 자도 상속세를 납부해야 한다.
유류분 제도가 헌법소원에 올라 지난 17일 위헌 여부에 대한 공개 변론이 열렸다. 고인의 뜻과는 무관하게 상속인의 상속분을 보장해주는 점 때문에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