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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그룹 회계법인]① 삼성과 삼일 '1등끼리의 거래'

  • 2015.05.11(월) 16:33

기업과 회계법인은 '묘한 관계'다. 회계법인은 기업의 감시자이자 조력자 역할을 하고, 기업은 회계법인의 감시를 받는 동시에 중요한 수입원 노릇을 한다. 기업은 재무상황을 통째로 보여주며 감시와 평가를 받고, 동시에 세무자문이나 경영자문도 구한다. 회계법인은 자문료도 받지만 감시료도 받는다.

 

'묘한 관계'는 기업의 규모가 커질수록 복잡해진다. 기업은 더 큰 비용을 들여 감시와 자문을 받고, 회계법인은 더 큰 책임과 수익의 경계에 서게 된다.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재벌그룹의 기업들은 어떤 회계법인들과 이같은 관계를 맺고 있을까. 10대 그룹사의 회계법인 현황과 그 생태계에 숨어있는 함수관계를 들여다봤다.[편집자]

 

10대그룹 회계법인 현황 분석방식

 

공정거래위원회가 선정한 2014년 대기업집단 순위 중 총수가 있는 자산 상위 10개 기업집단의 유가증권 및 코스닥시장 상장 계열사 96곳을 대상으로 분석했다. 공기업그룹과 총수가 없는 기업집단은 제외했다. 회계법인 목록과 개별 감사보수 및 비감사보수 내역은 각 기업이 금융감독원을 통해 공시한 사업보고서에서 추출했다.

 

대부분의 기업은 회계법인을 스스로 선택한다. 금융감독당국이 문제가 있는 기업에 대해 외부감사인인 회계법인을 강제로 지정하는 제도가 있긴 하지만, 이 규제를 적용받는 기업들은 많지 않다. 2014년 기준으로 전체 외부감사대상 기업의 1.3%, 전체 상장법인의 4.6%에 불과하다.

 

2009년 감사인 6년 의무교체 제도가 폐지되면서 기업의 선택권은 더 커졌다. 대부분의 기업은 3년마다 회계법인과 감사계약을 체결한다. 3년마다 신규 선임할 수도 있고, 기존의 회계법인과 3년 더 계약을 연장할 수도 있다. 기업의 외부감사 용역을 따 내기 위한 회계법인들의 경쟁이 치열한 이유다.

 

특히 대기업 감사용역 유치는 경쟁이 뜨거운 분야다. 기업규모가 클수록 감사시간이 많이 투입되고 보수도 많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은 시간당 보수도 좋다.

 

삼성그룹사 외부감사인 절반은 '삼일'회계법인

 

그런데 1등 기업 삼성에 대해서만은 경쟁 자체가 어려운 모습이다. 삼성그룹 계열사의 외부감사는 공교롭게도 '회계업계의 삼성'으로 불리는 삼일회계법인이 독식하다시피 하고 있다.

 

2014년 사업보고서 기준으로 보면 삼성그룹의 상장계열사 18곳 중 절반인 9곳의 외부감사를 삼일회계법인이 맡고 있다. 그룹 핵심인 삼성전자와 삼성그룹의 모기업인 삼성물산이 삼일회계법인에 외부감사를 전담시키고 있고, 삼성중공업, 삼성엔지니어링, 삼성정밀화학, 삼성생명, 제일기획, 에스원을 비롯해 계열 중 유일한 코스닥 상장사인 크레듀까지 모두 삼일회계법인과 외부감사계약을 체결중이다.

 

삼정회계법인이 4, 안진회계법인도 3곳의 삼성계열사를 고객으로 유치하고 있지만 다른 재벌 계열사들과 비교하면 삼일의 비중은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11개 상장계열사 중 삼일회계법인을 외부감사인으로 두고 있는 기업은 2곳뿐이다. 오히려 안진회계법인(4)과 삼정회계법인(3)이 현대차그룹과 더 많은 외부감사계약을 체결중이다.

 

SK그룹 역시 삼일회계법인에 외부감사를 맡긴 상장 계열사는 2곳밖에 없었다. SK그룹 17개 계열사 중 7곳이 삼정회계법인과 계약을 맺었고, 한영회계법인(4)과 안진회계법인(3)도 삼일회계법인보다 더 많은 SK계열사의 외부감사를 진행했다.

 

전체 10대그룹 상장사에서 삼일회계법인의 외부감사 비중이 30.2% 수준인 것과 비교하더라도 삼성그룹에서 50% 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것은 눈에 띄는 대목이다.

 

길고 긴 인연..삼일은 20년 삼성 단골

 

삼성그룹 계열사의 감사인 교체주기를 보면 삼일회계법인의 존재감은 더 부각된다. 삼성전자는 공시자료가 남아 있는 1996년부터 줄곧 외부감사를 삼일회계법인에 맡겼다. 올해도 삼일회계법인이 외부감사를 맡았으니 20년째 단골이다. 삼성물산과 삼성중공업, 삼생생명도 모두 20년 째 삼일회계법인과 인연을 맺고 있다.

 

지난해 신규 상장하면서 외부감사인 의무교체대상이 된 삼성SDS가 삼일에서 삼정회계법인으로 갈아타지 않았다면 삼성그룹 계열 외부감사인 중 삼일회계법인의 비중은 더 높았을 것이다.

 

현행법은 동일한 기업이 동일한 회계법인과 계속감사를 진행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회계법인은 같더라도 현장에서 실제 감사를 진행하는 감사인(회계사)만 다르면 되기 때문이다. 회계부정이 확인되거나 외부감사과정에서 문제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회계법인 교체는 하지 않아도 된다.

 

법적인 문제가 없다지만 동일 회계법인의 장기간 연속감사를 우려하는 시선은 적지 않다. 유착과 이에 따른 감사품질저하 가능성 때문이다. 3년마다 감사인을 교체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권한은 기업에 있다. 기업은 연결감사 조건이나 입찰가격 등을 봐가면서 회계법인을 선택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감사계약을 따 내기 위해 감사인 스스로 감사보수를 깎기 시작할 수 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정하나 선임연구원은 "동일한 감사인의 감사기간이 길어지면서 감사인과의 유착 가능성과 독립성 저해 등이 우려되고, 이에 따른 감사품질의 저해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에서 계류되긴 했지만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의원의 '연속감사 9년 제한' 법안의 취지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법개정이 뒤따라 주지 않는 한 삼성과 삼일, 그들만의 거래는 더 탄탄해질 가능성이 높다.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 이후 연결재무제표가 주 재무제표가 되고, 대기업의 경우 계열사들도 모기업과 같은 회계법인으로 갈아탈 여지가 커졌다.

 

중견 회계법인 관계자는 "계열사 실적도 연결로 표시하게 되니까 기업 입장에서도 여러모로 같은 곳에 맡기는 게 편한 측면이 있다"며 "연결재무제표 작성 때문에라도 동일 회계법인과의 거래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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