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바뀌는 세법'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세제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제적 흐름에 민감하고 정책 대응력이 빠른 선진국일수록, 세법 개정은 활발하다.
세법을 자주 개정하는 이유는 ①새로운 경제 현실에 맞는 과세체계를 갖추고 ②정책 수단으로 활용하며 ③조세회피를 차단해야 하고 ④늘어나는 정부 지출에 맞춰 세입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네 가지 요소는 대부분의 나라가 세법 개정 시 고려하는 공통 기준이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들은 이런 공통기준을 어떻게 적용할까?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보고서를 통해 최근 2년간 주요국(미국, 일본, 유럽연합)의 조세정책 흐름을 살펴봤다.

IRA, 팁 소득, 세금 사기 (in 미국)
지난 한 해 미국 내 세금 이슈 중 중요한 키워드로는 단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꼽을 수 있다. 청정에너지·전기차·첨단 제조·청정수소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수십 개의 세액공제 항목이 만들어졌는데, 이는 단순한 경기 대응 입법이 아닌 행정·산업·국제조세 질서까지 아우르는 파급력을 가졌다.
조세재정연구원이 발간한 재정동향(주요국의 조세동향)에 따르면 미국 재무부와 국세청은 2023년 12월 14일, IRA에 따른 '첨단제조생산 세액공제'에 대한 지침을 내놨다. 첨단제조 기술을 활용한 제품(배터리 부품 등)에 대한 세액공제로, 미국 내에서 생산해 미국 내에서 판매하는 경우 적용받는다.
같은 달 22일에는, 미국 내 적격생산시설에서 수소를 생산할 때 발생하는 '적격청정수소 1kg당 최대 3달러를 적용하는 세액공제(수소 1kg당 세액공제액은 온실가스배출량에 따라 차등)'도 발표했다. 미국 재무부와 국세청은 2023~2024년 동안 IRA 관련 세액공제에 대해 수십 건의 최종 규정·지침·시행령을 내놨다.
IRA가 미국 세제의 이슈로 꼽힌 데는, 세무 행정 구조 자체를 바꿨다는 점(디지털 전환)도 한몫한다. 2024년, 미국 국세청은 IRA에 따라 시행한 신고지원 서비스의 성과를 발표했다. IRA 기금을 통해 국세청에 수백억 달러 규모의 예산을 지원, 신고지원 서비스를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대표적으로 상담 서비스를 들 수 있다. 2023년에 5000명의 신규 상담원을 추가 배치하면서, 유선 상담 서비스 수준을 88%(2024년)로 끌어올렸다. 2022년(15%)과 비교해 5개 넘게 늘어난 수치다. 챗봇 이용 건수도 2023년 33만건에서 지난해 83만2000건으로, 1년새 150% 가까이 증가했다. 또 다이렉트 신고 등 무료 신고 프로그램을 통해 45만건 이상의 신고서가 국세청으로 접수된 부분도 서비스 개선 사례도 지목된다.
IRA는 단순한 미국 내 세제 정책을 넘어, 한국을 포함한 주요 교역국의 조세 전략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전기차·배터리·청정에너지 산업을 중심으로 한 공급망을 비롯해, 세제 혜택 요건이 미국 중심으로 설계됐기 때문이다. IRA에 따른 친환경차 세액공제(지난해 5월 발표)만 보더라도, 친환경차 배터리에 포함되는 핵심 광물의 50% 이상은 북미지역에서 채굴·가공·재활용돼야 한다는 요건이 붙어 있다.
'팁(식당 종업원 등 서비스 제공자에게 자발적으로 주는 현금)' 소득을 과세 대상에서 제외하는 여러 법안도 제출되어 있다. 미국은 현재 팁 소득에 대해 근로자 개인의 소득세와 연방급여세(임금의 6.2%까지 근로자와 고용주 모두에게 부과하는 세금) 등을 부과하고 있다. 미국 의회조사국은 팁 소득의 비과세로 발생할 수 있는 영향을 다룬 보고서를 내놓은 바 있다.
노동공급 측면에서는 "소득의 비과세로 근로자의 추가 근무에 대한 인센티브가 떨어지고 노동 공급시간에 상향 압력을 가할 것"이라고 봤다.
올해 2월 27일에는, '더티 더즌(Dirty Dozen)'으로 불리는 주요 세금 사기 수법을 발표했다. 미국 국세청에서 납세자와 세무 전문가의 세금 사기 관련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2002년부터 매년 추진하고 있는 캠페인이다. 12가지 주요 세금 사기 수법을 소개하고 있으며, 주요 유형으로는 허위 정보를 기반으로 이를 유포하거나 허위 세무 신고(공제 등)가 주를 이룬다.

출산 장려와 AI 세무조사(in 일본)
일본의 조세정책 트렌드는 '인구감소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에서는 '세제 인센티브' 중심의 정책 설계가 이뤄지고 있다. 특히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에 빠진 일본 경제를 회복시키는 도구로도 세제를 쓰고 있다.
2023년 12월, 일본은 '2024년 세제 개정 대강'을 발표했다. 세제 개정 대강은, 우리나라로 치면 기획재정부가 매년 7월에 발표하는 세법개정안으로 보면 된다.
소득세는 3만엔(2024년 1월 기준 원화 환산시, 약 27만원)·주민세는 1만엔(9만원)을 감세하는 내용을 담았다. 자녀를 키우는 가정이나 근로자에 대한 감세로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또 육아 세대에 적용하는 주택융자 세액공제의 차입 한도액 상한을 기존 수준으로 유지하기로 했다.
특히 디플레이션 탈출을 골자로 한 투자 촉진·경제사회 구조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정책도 다수 담았다. 법인세 분야에서는 임금인상을 유도하는 세제 혜택이 핵심 변화로 꼽힌다. 기업이 직원 급여를 일정 비율 이상 올렸을 때, 법인세 공제를 확대하는 것이다. 대기업·중견기업이라면 임금 인상분의 최대 35%, 중소기업은 45%를 공제할 수 있다.
최근 발표된 '2025년 세제 개정 대강'에도 19∼22세 자녀를 둔 부모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는 특정 부양공제 조건을 자녀의 연 소득 103만엔 이하에서 150만엔 이하로 올리는 내용이 담겨 있다.
세무조사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인공지능(AI)의 힘을 빌리고 있다. 일본 국세청은 2022년부터 소득세 조사에 AI를 도입하기 시작했으며, 2023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조사 대상자 선정에 AI를 활용하고 있다.
①AI는 납세자가 과거에 제출한 세금 신고서·조사 결과를 학습하고 분석해 ②신고 누락 가능성이 높은 대상을 조사 대상자로 선정한다. 이런 조치가 톡톡한 효과를 보고 있다. 이 기간, 중소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통해 1665억엔(2025년 3월 10일 기준 원화 환산시 1조6431억원)의 추징세액이 발생했는데, 1년 전보다 약 193억엔(1904억원) 늘었다.
'그린 조세' 전략 편다(in 영국·EU)
유럽연합(EU)의 조세정책은 '기후 위기 대응'이 핵심 축이다. 탄소 배출을 줄이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유도하기 위해 조세 구조 자체를 기후 중심으로 전환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핵심 전략은 '2050 탄소중립 목표'이며, 이를 실현할 도구로는 세제 인센티브를 비롯해 탄소세·에너지세·플라스틱세 등을 쓰고 있다.
지난해 1월, 영국은 에너지 저감형 자재에 대해 부가가치세 영세율(0%)을 적용하는 조치를 내놨다. 이는 가정·건물 차원에서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전략적 조세 유인책이다. 같은 해 7월에는, 에너지 이익부담금 세율을 기존 35%에서 38%로 상향 조정하는 안도 발표하기도 했다.
프랑스 재무부도 '그린 조세' 전략을 펴고 있다. 배터리, 태양광 패널, 풍력 터빈·열 펌프 생산 산업을 대상으로 한 투자 비용의 일부를 소득·법인세에서 깎아주는 '녹색산업 투자 세액공제'를 발표한 것이다. 기본 공제율은 20%이며, 투자 대상의 소재지에 따라 25~40%의 공제율을 적용받는다.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이 공제가 '그린 딜 산업 계획'에 상응하는 조치라고 승인했다.
덴마크 의회는 지난해 6월, EU 배출권 거래제도(ETS) 안팎의 모든 산업체에 통일된 'CO2세(탄소세)'를 도입하는 법안을 채택한 바 있다. 법안에 따라 2030년 CO2 배출량에 대한 세금 수준은, EU ETS 외부 기업의 경우 CO2 배출량 1톤당 750덴마크크로네(2024년 6월 19일 기준 원화 환산시 약 14만9212원)가 된다. EU ETS 내부 기업의 경우는 CO2 배출량 1톤당 375덴마크크로네(7만4606원) 수준이다.
그리스 국세청은 지난해부터 호텔 등 객실 이용에 대한 '기후회복세'를 매기고 있다. 이는 숙박세를 한 단계 강화한 세금으로, 관광객이 머무는 숙소에서 직접 내야 한다. 일일 기준으로 1~2성급 호텔은 약 2100원, 5성급은 약 1만4300원 수준이다. 단, 무료 숙박 서비스에 대해서는 기후회복세 부과 대상에서 빼준다.
과세 타깃된 고소득 자산가들(in 프랑스·이탈리아)
올해 2월, 프랑스 하원은 고소득 자산가에 대한 과세 칼날을 빼들었다. 순자산이 1억 유로(3월 기준, 약 1500억원)를 넘는 개인에게 2026년부터 최소 2%의 재산세를 부과하는 법안을 채택한 것이다.
조세재정연구원은 "해당 입법안은 논의가 진행 중이며, 프랑스 정부는 아직 구체적인 형태를 밝히지는 않았으나 고소득 자산가에 대해 다른 유형의 재산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한편 이탈리아 정부는 외국 부유층을 대상으로 하는 '정액세' 제도를 손질했다. 2024년 8월 10일 이후 이탈리아로 거주지를 옮긴 고액자산가가 이 제도를 선택할 경우, 해외에서 발생한 모든 소득에 부과되는 단일세액이 기존 10만 유로(약 1억5000만원)에서 20만 유로(약 3억원)로 두 배 인상됐다.
이탈리아는 그동안 외국 자산가 유치를 위해 정액세 제도를 운영해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세수 확보와 조세 형평성 등을 고려해 세율 조정을 단행한 것으로 보인다. 세금이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의 생활환경이나 단순한 세제 구조는 여전히 고액 자산가들에게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