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원지간' 같은 납세자와 과세관청 사이에 발생하는 불복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수십년을 과세관청 입장에서 근무한 김태호 전 국세청 차장(현 세무법인 위드윈 회장)이 국세청을 퇴직한 후, 납세자 입장에서 바라 본 불복제도에 대한 소회를 통해 '해결책'을 찾아보고자 한다.
불복은 '위법 또는 부당한 처분을 받거나 필요한 처분을 받지 못해 권리나 이익을 침해당한 자가 그 처분의 취소 또는 변경을 청구하거나 필요한 처분을 청구'(국세기본법 제55조)하는 것을 말한다.
납세자와 과세관청 모두에게 많은 기회비용을 발생시키는 불복이 왜 발생할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발생을 최소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세금의 정의에서 출발해 살펴보려 한다.
나무위키는 세금(稅金·tax)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경비로 사용하기 위하여 법률에 의거하여 국민으로부터 강제로 거두어들이는 금전 또는 재화'라고 정의한다.
먼저 세금 징수는 '강제적으로' 이뤄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시장경제에서 재화나 용역의 구입은 대가를 지불해야 하고, 그 대가를 지불한 사람만이 소비할 수 있는 것이 원칙이다.
그렇다면 세금도 강제로 거둘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각자 누리는 공공서비스에 대응하도록 부과하면 이에 대한 불복은 획기적으로 감소하지 않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제공하는 공공서비스는 일반적인 재화나 용역과는 다른 독특한 특징이 있다.
예를 들어 국방과 치안 서비스는 내가 세금을 내고 그 서비스를 누린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소비의 양이 줄어들지 않고(비경합성), 세금을 내지 않은 사람의 소비를 막을 수도 없다(비배제성). 사실 소비를 배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도 않다.
따라서 사회전체적으로 바람직한 양의 서비스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그 조달비용을 강제로 징수할 수밖에 없고, 이렇게 탄생한 징수의 강제성은 세금이 태생적으로 불복과 함께하도록 만들고 있다.
아울러 세금은 법률(세법)에 의거해 징수한다.
세법이 일의적으로 해석되고 적용된다면, 불복이 발생할 여지가 획기적으로 축소되고 설령 발생하더라도 금방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경제적 현상을 포섭하기 위해 세법은 불가피하게 추상적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으며, 세법을 현실에 적용하는 과정에서도 당사자가 처한 입장과 관점에 따라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국세청에서 불복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행하는 제도를 살펴보자.
국세청에서는 과세 전 과세요건 검토과정에서, 납세자와 법령해석에 이견이 있는 경우에는 과세기준자문위원회를, 사실판단에 이견이 있는 경우에는 과세사실판단자문위원회를 거치도록 한다.
우선 세법을 해석하는 단계에서 이견이 발생할 수 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는 어떤 단어의 정의를 명확하게 하지 않고도 사용하고 있지만, 세법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그 단어가 의미하는 바를 명확히 하는 단계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물론 세법상 특정 단어에 대한 정의 규정이 있기는 하지만,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다고 해서 모든 단어에 대해 규정을 할 수도 없다. 규정이 명확하지 않을 경우, 납세자는 조세부담을 줄이는 쪽으로 과세관청은 과세대상을 넓히는 쪽으로 해석하려는 유인이 있을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특정 단어나 어휘에 대한 세법상 규정이 명확한 경우에도 여전히 갈등의 씨앗은 남아있다.
예를 들어 세법이 과세대상을 A, B, C로 규정하고 있고, 이와 유사하지만 적시되지 않은 경제활동 D가 있다고 가정하자.
납세자는 그 세법규정을 한정적으로 해석하여 A, B, C만 과세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고, 과세관청은 똑같은 규정을 보고도 A, B, C는 과세대상을 예시적으로 열거한 것일 뿐, 그와 유사한 경제활동 D도 당연히 과세대상이 된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
세법의 각 규정들에 대해 일의적인 해석이 됐다고 하더라도, 납세자의 어떤 행위가 어디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사실판단의 영역에서 또 다시 이견이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명의신탁은 일정한 경우 증여로 의제되어 과세한다. 이때 납세자는 특정한 과거의 행위에 대해 당시의 불가피한 사정이나 다른 행정상의 규제 때문에 불가피하게 명의신탁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반면 과세관청은 명의신탁의 외양을 갖추었고 조금이라도 세금회피의 가능성이 있다면 과세하려는 경향이 있다.
물론 법률해석이나 사실판단의 어려움은 세법의 영역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세금은 강제로 징수된다는 점 때문에 다른 어떤 행정분야보다도 불복의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불복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까?
먼저 세금은 그에 직접 대응하는 반대급부는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평온한 일상을 유지해주고 주변의 어려운 이웃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원천이라는 점을 인식시켜줄 필요가 있다.
우리가 자주 접하는 '공익광고'는 이러한 세금징수의 강제성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법률 해석이나 사실판단에서 납세자와 과세관청 간의 이견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세법을 좀 더 구체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
물론 세법이 구체적으로 규정될수록 납세자의 세금회피 가능성은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세법이 모든 경제현상에 대해 사전적으로 미리 규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과 세금 불복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감안한다면, 차라리 납세자에게 예측가능성을 부여해야 한다.
납세자가 경제활동에 보다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사회적, 장기적으로 더 바람직하다.
또한 납세자도 과세요건이 모두 성립되고 난 다음에 절세방안을 찾을 것이 아니라, 경제적 선택을 확정하기 전에 그 행위에 부수되는 세금 이슈를 과세관청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적용해보는 과정을 거쳐봐야 한다.
이것이 예상하지 못한 세금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김태호 세무법인 위드윈 회장은?
제29대 국세청 차장으로 공직생활을 마무리하고, 최근 김재철 전 중부청장이 설립한 세무법인 위드윈에 합류해 근무하고 있다. 후배들이 함께 근무하고 싶고 납세자와 함께 성장하는 세무법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