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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못 주겠다" 배째라식 납세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2024.03.29(금) 17:00

세무조사 때 자료제출 거부로 소득 파악 어려워
'과세 정당성' 위협…국세청, 제도개선 고심 중

개인이든, 법인이든 세무조사는 그 말만 들어도 무시무시하죠.

탈세 의혹에 대해 나중에 다투어 보더라도, 세무조사로 세액이 추징된다는 점에서 납세자로서는 현금 유동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을 텐데요. 조금 과한 표현을 쓰자면 재산권 침해로도 비추어질 수 있죠. 세무조사 과정이 위법·부당하다고 인정됐을 때는 '과세 무효'가 되지만, 납세자 부담(소송비용 등)이 큰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세무조사 절차를 적법하게 지켰는데도, 납세자가 자료를 못 주겠다는 '배째라' 식 태도를 보이면 어떨까요. 사업자가 벌어들이는 소득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정당한 과세권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제재 수단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방식이 미흡해서, 국세청의 조사권을 무력화시키는 모양새죠. 현재 국세청은 세무조사 과정에서 절차·내용적 측면의 과세 적법성을 높이려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습니다. 여기엔 납세자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내용도 고려된다고 합니다. 

세금을 매겼는데 '무효'가 될 수 있다고요?

세법에서 세무조사는 신고·납부 의무가 있는 세목을 모두 살펴보는 통합조사를 원칙(국세기본법 81조)으로 규정하고 있는데요. 물론 모든 사업자에게 세무조사 칼날을 들이대는 건 아닙니다. 국세청의 통계연보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개인사업자 확정신고 인원은 933만9463명으로, 이 가운데 조사 대상은 3860명이었습니다. 불과 0.04%입니다. 법인사업자도 극히 일부만 검증에 오르고 있죠(103만3749곳 중 3963곳). 

과거만 해도 납세자가 세무조사 절차를 문제 삼은 건 없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모든 절차마다 흠결이 있다며 과세 무효를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는데요. 일반 국민 피부에 와닿는 사례를 들어볼까요. 

부당합니다

#. A씨는 지난 2009년 대표이사로 있던 회사 주식을 양도하고, 같은 해 한 차례 더 양도했으면서도 국세청에 양도소득세를 신고·납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국세청은 2017년 A씨에게 등기우편으로 양도세를 내라고 결정·고지하는 내용의 '세무조사 결과·예상 고지세액 통지서'를 발송했는데요. 적법한 송달이냐 아니냐를 두고 벌어진 법적 다툼에서 A씨는 이겼습니다. 당시 법원은 등기우편으로 송달되는 납세고지서를 집배원이 당사자에게 직접 전달하지 않고 우편함에 넣었다면 송달 효력이 없어 과세 처분도 무효라고 판결했습니다. 

또 다른 사례도 있습니다.

#. 국세청은 지난 2016년 개인사업자인 B씨에 대한 세무조사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조사에 투입된 국세공무원은 납세자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검토하던 중, 조사 대상(2016년) 외 신고 내용이 잘못됐다고 의심했는데요. 이후 2012~2015년 귀속 소득에 대한 세무조사 결과를 통지했습니다. B씨는 절차상 문제가 있다며 조세심판원에 불복했고, 사실관계를 살핀 심판원은 B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조사 범위를 확대하면서 그 내용을 문서로 통지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국세청의 자의적 법집행이든 아니든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만, 거둬야 할 세금은 걷지도 못하고 징세 행정에 대한 불신감만 키운 꼴이 됐죠.
자료 제출 거부하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

국세청에 따르면, 국세청은 한국세법학회를 통해 '세무조사 과정에서 적법절차 준수·납세자 권리보호 강화'를 주제로 한 연구용역을 진행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국세청 관계자는 "과세 정당성을 강화하고 납세자의 부담과 재산권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함"이라고 했는데요. 세무조사 통지부터 연장, 중지, 범위 확대 등에서 절차적인 문제를 어떻게 하면 개선할 수 있을지 들여다보기 위한 연구라고 합니다. 특히 중점(연구 목표)을 두는 부분으로 '2가지'를 꼽았는데요. 하나는 납세자의 자료 제출이고, 다른 하나는 조세소송 패소율 개선입니다. 

우리도 부당합니다

현재 납세자가 국세공무원의 질문조사권에 응하지 않거나 과세 자료의 제출을 거부한다면 최고 1억원의 과태료를 맞습니다. 2022년까진 현재의 20%(2000만원) 수준이었죠. 문제는 이러한 제재 수단이 조사 기피를 막을 수 있을까란 의문이 많다는 점입니다. 

납세자가 정상적으로 세무조사를 받으면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의 세금이 부과되는 상황이라고 가정을 해보죠. 과세에 필요한 자료를 주지 않으면 1억원 이하의 과태료만 부담하면 됩니다. 후자가 유리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텐데요. 자료 요구를 100번 거절해도 국세청이 부과할 수 있는 과태료는 1억원이 최대(하나의 세무조사 과정에서 1건의 과태료만 인정)이기 때문인지, 자료 제출을 회피·거부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형사절차와는 달리 세무조사 단계에선 강제적으로 자료를 확보할 순 없습니다. 이렇다 보니 조세 탈루를 용인하고 있단 우려로 이어집니다. 또 다른 문제로 정당한 과세권이 흔들릴 수 있단 것인데요. 자료 미확보로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없는 만큼, 과세 논리도 부족할 수밖에 없겠죠. 2022년 현재 국세청의 조세소송 패소율은 12.0%로, 1년 전보다 0.9%포인트 올랐습니다. 대형로펌 등이 소송 업무를 맡은 고액(50억원 이상) 사건의 패소율은 36.6%로, 전체 평균을 훨씬 웃돕니다. 누구는 부실한 과세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현장에선 자료 제출 거부에 대한 제재 수단이 미흡하다는 목소리도 많이 있습니다. 

국세청 관계자는 "절차상 납세자는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데, 안 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실질적인 사실관계 측면에서 논리가 약해서 지는 경우가 있어, 이런 패소 부분과 자료 미제출 제재 수단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자료 제출 거부땐 금전적 제재 반복?

2022년 12월. 국세청 산하 국세행정개혁위원회와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주최로 연 '국세행정포럼'에서 같은 주제를 다룬 바도 있죠. 이 포럼에서 논의되는 안건은 정책 추진에 반영되어 왔습니다. 당시 발제자로 나선 이중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태료 부과가 실효성 있는 제재가 되기 위해서는 납세자의 규모를 고려해 과태료 수준을 달리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면서, '제재의 반복·가중화'를 개선안으로 제시했습니다.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횟수에 따라 과태료를 부과하자는 의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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