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럽게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로 대한민국은 예측하기 어려운 한 해를 맞이하고 있다.
조세제도는 통상 대선을 전후로 대대적인 개편이나 개혁 논의가 본격화되는 전환점을 맞는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촉박한 일정 속에 치러지면서, 여야 모두 조세공약 정비에 구조적인 제약을 받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조세공약의 부재가 개혁 동력의 공백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세금은 모든 국민의 경제활동과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국가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이에 택스워치는 연초 '2025 조세개혁' 기획보도를 통해 25인의 조세전문가들이 제시한 주요 개혁 과제를 심층 보도했다. 이번에는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해당 내용을 업데이트해 새 정부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조세개혁 어젠다'를 제시한다.

#. 상속세제 개편
전문가들은 지난해 국회에서 처리가 불발된 유산취득세 개편이 새 정부의 가장 시급한 조세개혁 과제로 꼽았다.
현재 우리나라 상속세 과세 방식은 유산세 방식이다. 유산세는 피상속인(망인)의 재산 전체에 상속세를 과세한 뒤, 상속인이 각각 받은 상속재산 비율에 따라 나눠서 부담한다. 여기서 누진세의 문제가 발생한다.
현행 상속세율은 상속재산이 많을 수록 세율이 누진적으로 높아지는데, 상속인 입장에서는 자신이 받은 것보다 높은 세율을 적용받아 세금을 내야 한다. 상속세를 납부할 능력이 되지 않아 상속받은 재산을 팔아 세금을 마련하는 것이 유산세 방식에서 나타나는 폐해다.
반면 유산취득세 방식은 상속인이 받은 상속재산에 대해서만 과세하기 때문에 비교적 낮은 세율을 적용한다. 당연히 세 부담이 적기 때문에 유산취득세로의 전환은 학계와 세무업계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된 대안이다.
이미 유산취득세에 대해서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 여야 누가 집권하든 상속세제 개편은 불가피해 보인다.
전문가들은 상속세제 개편 과제로 ①유산취득세 개편과 ②동일 세대에 상속세를 과세하는 것은 불합리하기 때문에 배우자 상속세는 폐지하거나 상속공제액을 상향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다만 유산취득세로의 개편은 임시방편일뿐, 근본적인 대안은 될 수 없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이에 따라 ③상속세 과세 체계를 자본이득세 과세 체계로 완전히 바꾸는 것에 대한 논의를 새 정부에서 시작해야 한다.
자본이득세는 상속을 받더라도, 그 재산을 처분하지 않는다면 과세하지 않는 방식이다. 재산을 처분해서 생긴 이익에 대해서만 과세하는 것이 자본이득세의 개념이다.
세금은 소득 발생과 부의 이전 단계에서 부과되며, 어디서 많이 과세할지는 그 나라의 역사와 국민 정서에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소득세와 상속세는 함께 논의해야 하기 때문에 자본이득세도 같이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밖에 경영 능력이 안 되거나, 기업을 물려받을 생각이 없는 자녀가 자산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도록 ④부의 대물림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최근 신흥 부자들은 기업을 물려받기보다는 사회에 환원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공익법인에 부동산을 기부하면 세금 문제가 발생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도 새 정부에서 논의해야 한다.
#. 미래 세원 확보(인구감소 대응)
0.75명. 2024년 합계출산율이다.
합계출산율은 가임기 여성(15~49세)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산율로, 0.75명이라는 숫자는 여성 1명이 평생 0.75명을 낳는다는 의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출간한 '한국의 태어나지 않은 미래: 저출산 추세의 이해'에 따르면 출산율이 지금과 같은 수준을 유지하면 2082년 전체 인구의 58%가 65세 이상의 노인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인부양 비율은 현재 28%에서 2082년 155%로 급증할 것으로 내다봤다. 노인부양 비율은 생산가능인구(15~64세) 100명이 고령인구(65세 이상) 몇 명을 부담하는지를 나타내는 비율로 155%라는 의미는 생산가능인구 100명이 155명의 노인을 부양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로 인한 건강보험이나 기초연금 재정 수요와 복지재원 급증 지적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젊은 세대의 부담이 커지면 가처분소득이 줄어들어 경기는 침체되고 세수가 감소하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조세전문가들은 향후 정부가 인구구조 변화에 대비한 미래 세원 확보를 위한 세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대비책으로는 ①젊은 세대부터 노후를 대비한 개인연금 가입을 장려하는 강력한 세제지원이 필요하다. ②생산가능인구 감소를 대비해 외국인 노동자를 지원하는 세제를 고민해야 한다. ③출산 장려 정책과 더불어 독신세, 무자녀세 등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한 새로운 세목 신설을 검토해야 한다.
세원 확보에 대한 대안으로 증세를 거론하자면 ④부가가치세율 인상이 가장 적절한 방안이라는 의견이 다수 나왔다. 다만 대선을 앞둔 시기에 정치적 부담으로 인해 증세 논의가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재원 마련이라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 정부가 들어서면 반드시 증세를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인구감소는 필연적으로 지방 소멸을 야기시킨다. 이에 따라 ⑤지방으로 이전한 기업의 임직원의 경우 소득세 감면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지방에 거주하는 임직원의 가처분소득을 늘려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자는 의도다.

#. 인공지능(AI) 등 미래 산업 대응 세제 마련
AI의 등장으로 산업 전반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 세계 각국은 폭발적인 성장 가능성을 가진 AI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종 세제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다.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EU) 등은 AI 산업에 대한 막대한 지원과 각종 세제혜택으로 신산업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최근 들어 AI 기술을 국가전략기술에 포함시켜 세제혜택을 주지만, 이는 지방에 한정됐다. 수도권 소재 기업에는 세액공제를 주지 않는 것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새 정부가 ①AI 반도체, 로봇, 자율주행 등 신산업 발전을 위한 적극적인 세제 지원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업 규모에 따라 차등을 두지 말라는 것이다. AI 반도체 산업은 규모의 경제가 적용되는 산업으로 대기업에 보다 많은 세제지원을 해야 한다.
이에 더해 ②AI나 로봇의 도입으로 인간의 일자리가 감소하는 문제에 대비하기 위한 세제 논의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고용 감소는 단순히 개인 소득의 축소를 넘어 사람의 노동을 기반으로 한 소득세와 사회보험 체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소득세, 사회보험료의 경우는 전통적인 산업을 기반으로 한 세원 모델이다.
앞으로는 AI 기술에 대한 과세 등 새로운 세원 모델에 대한 정의와 조세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③가상현실(메타버스)에서 벌어들이는 소득, 자산 거래에 따른 과세 문제도 현실적인 과제로 떠오를 것이다. 새 정부는 가상현실에서의 과세 문제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 미래 세제 설계 위한 '조세 싱크탱크' 설립
많은 전문가들이 정부가 연례행사처럼 세법개정안을 발표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빈번한 세법 개정은 제도의 복잡성을 가중시키고 납세자의 예측 가능성을 저해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 세제다. 특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세법이 변화하는 것은 국가 미래를 고려했을 때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기획재정부의 세제실이 주도하는 세법개정안은 정부의 입맛대로 연구용역을 발주해 구색만 맞춰 개정안을 발의하는 '땜질식'이 주로 많기 때문에, ①조세전문가들이 모여 장기적 관점에서 세법은 연구하는 상설 연구기관을 운영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 연구기관에서 제안하는 세법개정안은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국회가 수용하는 방식으로 운영해야 한다. 그래야 정치권에서 국민 눈치를 보며 세법개정을 하거나 미루는 일을 막을 수 있다.
별도의 장치로 ②조세전문가가 아닌 국회의원들이 무분별하게 세법개정안을 제출하는 것도 제한 또는 폐지해야 하며 ③조세입법에 참여하는 입법자(국회의원)의 조세 전문성 확보를 위한 교육을 의무화하는 제도도 필요하다.
※ 해당 기사는 박훈 서울시립대 교수, 신민호 서울지방관세사회장, 안수남 세무법인 다솔 대표, 오문성 한양여대 교수, 이동건 한밭대 교수 외 전문가 20인에게 자문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