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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세극장]제약회사 회장님의 비밀결혼식

  • 2021.05.21(금) 15:20

부동산 취득자금 6억원 출처조사, 증여세 등 3억원 부과

항상 서로를 존중하고, 남편과 아내로서의 도리를 다하며, 평생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까?

주지스님의 주례가 끝날 무렵, 눈가에서 터져나오는 눈물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잃고 불교인으로 살아오다가 58세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결혼하게 된 인생 역정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어요. 

남편은 제약회사의 사주이자 대표이사로서 상당한 재력을 가진 분이었어요. 80대 중반의 나이가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호탕하고 기력이 넘쳤죠. 돈만 보고 결혼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었지만, 그의 재산을 조금도 탐낼 생각이 없었어요. 

결혼식을 올렸지만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어요. 재산 분쟁에 휘말리지 않고 오로지 남편 한 사람만 바라보고 싶었죠. 하지만, 그의 가족들은 예고도 없이 찾아와서 저를 꽃뱀으로 취급하며 막말을 퍼부었어요. 그리고, 그들이 내민 것은 바로 약정서였어요. 

몹시 기분이 언짢았고 자존심도 상했지만, 그를 위해 약정서에 도장을 찍었어요. 그의 가정에 불화가 생기는 것을 원치 않았거든요. 법무법인을 통해 공증까지 받고 나서야 남편이 살던 집에서 함께 신혼살림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저와 나이가 비슷해보이는 그의 딸과 변호사 사위가 함께 찾아와서 약정서를 보여주더군요.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재산권도 포기하라는 내용이었죠. 대신 3억원 상당의 아파트를 지급하는 것으로 금전 문제를 정리하는 것이었어요. 

남편은 저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을 내비치면서 4억원 짜리 재건축 아파트를 사줬어요. 단독주택을 취득하는데 보태라며 가족들 몰래 2억원을 건네주기도 했어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든든한 남편 덕분에 버텨낼 수 있었고, 부부생활은 13년 동안 이어졌어요. 

내가 죽더라도 매월 생활비를 보내주고 각별히 신경써주어야 한다.

남편은 가족들에게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어요. 마지막 순간에도 저를 위해 걱정했던 모습이 유언장에 남아있었죠. 저는 그의 마음만으로 충분했어요. 그래서, 유언에 담긴 제안을 모두 거절하고 다시 절에 들어오게 됐어요. 

그의 장례식을 치른 지 1년이 지난 후, 국세청 공무원들이 찾아왔어요. 재건축된 아파트와 단독주택을 보유한 저에게 부동산 취득자금 출처조사를 실시한다고 했어요. 

남편으로부터 6억원을 증여받았는데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였죠. 국세청이 보내온 증여세 결정 결의서에서는 가산세까지 합쳐 총 3억원의 세금이 적혀 있었어요. 

원래 부부 사이에는 재산을 주고받더라도 6억원 이내에는 증여세가 과세되지 않는데, 무언가 잘못된 것 같았어요. 그래서, 세무대리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국세청을 찾아갔어요. 

수백억원의 상속재산에 대한 상속권을 포기하는 대가로 겨우 4억 아파트가 말이 되나요?

재산권 포기 약정서를 작성할 당시를 다시 떠올려보면,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어요. 그때 제가 받은 돈은 정신적 손해배상의 대가인 위자료였거든요. 위자료에는 증여세를 과세하지 않으니까 저도 세금을 낼 필요가 없잖아요. 

하지만, 국세청은 꿈쩍도 하지 않았어요. 저뿐만 아니라 남편의 가족들도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약정서에도 정신적 피해보상에 대한 내용이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위자료로 볼 수 없다고 했어요. 

남편과 가족들이 미리 갈등을 예상하고 위자료를 지급한다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했어요. 비록 사실혼 관계라고 해도 위자료가 성립하려면 배우자가 부당하게 파탄에 이르게 한 책임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어요. 

결국, 국세청 심사청구에서는 위자료로 인정하지 않았고 증여세도 제대로 부과된 것으로 결정됐어요. 세금은 돌려받을 수 없었고, 행정법원에 소송을 내면 다시 한번 과세의 위법 여부를 따져볼 기회를 준다고 하네요. 

☞절세 Tip
이혼에 따라 정신적 또는 재산상 손해배상의 대가로 받는 위자료는 증여로 보지 않습니다. 다만, 조세포탈의 목적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증여로 보고 과세하기도 합니다. 사실혼 관계를 유지한 배우자의 부동산 취득에 대해서는 위자료나 재산분할로 볼 수 없다는 예규판례도 있으니, 재산을 나누기 전에 증여세 문제를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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