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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세와 감세 사이: 역대 정부의 세제개편안

  • 2025.01.09(목) 07:00

노무현·문재인 '불로소득 환수'…이명박·윤석열 '낙수효과'

대한민국의 조세제도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수술을 한다. 대선 당시 유권자에게 한 공약을 지키기 위해서는 증세를 통해 재원을 마련하거나, 기업의 경영활동 지원을 위해 감세하는 등 조세제도를 손 봐야 한다. 이에 세금 수입과는 별개로 세법개정안은 대통령의 정치 철학이 강하게 반영되기도 한다. 

정부의 세법개정안은 집권 내 조세정책 방향을 가늠할 중요한 지표로, 개혁 의지가 높고 추진 동력이 강한 집권 첫 해에 정권의 색깔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따라서 역대 정부의 정치, 경제, 복지 철학을 파악하려면, 각 정부가 집권 첫 해에 발표한 세제개편(또는 세법개정)안을 살펴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렇다면 역대 정부는 무엇을 중점에 두고 세제개편안을 만들었을까?

#. 노무현 정부 : 종합부동산세 탄생(feat. 이중과세 논란)

노무현 정부의 조세정책은 당시 야당으로부터 '세금 폭탄'이란 비난을 받았지만, 그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면 사실 감세정책에 더 가까웠다. 

2003년 8월, 노무현 정부 첫해에 발표된 세제개편안을 보면 첫 번째 과제는 '기업하기 좋은 조세환경 조성'이었다. 임시투자세액공제율을 올리거나, 중소기업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법인세 최저한세율을 낮췄다(12→10%). 대기업의 연구개발(R&D) 비용 중 일부를 최저한세율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안도 있었다. 

세금폭탄 논쟁을 불러일으킨 건 '조세형평성' 부문으로, 당시 개편안에는 상속·증여세를 완전포괄주의 과세 방식으로 전환하거나, 부동산 단기 양도차익에 대한 세 부담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기면서 자산가들의 부담이 커진 것이 원인이었다. 

조세형평성의 일환으로 부동산 보유과세를 강화하겠단 점도 자산가들의 불만에 기름을 끼얹었다. 정부는 그해 10월 '부동산 보유세 개편 방안'을 발표했고, 이때 등장한 게 종합부동산세였다.

종부세 과세가 처음 시행된 2005년에는 3만6000명이 총 392억원을 납부했으나, 지난해 12월에는 54만8000명이 총 5조원을 납부, 19년 만에 과세인원은 15배, 과세금액이 127배 증가했다.

종부세 제도를 시행한 지 20년이 됐지만, 현재까지도 '이중과세'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 이명박 정부 : 낙수효과(feat. 기업프랜들리)

'2008년 세제개편안'은 저세율과 합리적 과세를 모토로 삼았다.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세율을 낮추고, 왜곡된 조세 체계를 합리적으로 바로잡겠다는 의지가 모든 세목에 반영됐다. 당시 이명박 정부가 자기색깔을 분명히 드러낸 개편이란 평가가 짙었다.

먼저 법인세 최고세율은 25%에서 22%로 3%포인트, 2011년부터는 20%로 다시 2%포인트 낮추도록 했다. 감세가 '낙수효과'를 거둬 투자나 소비 확대, 고용 확대, 소비 촉진으로 이어져 경제활성화가 되는, 선순환 구조를 이뤄낼 것이란 기대였다. 

상속·증여세와 양도세를 소득세율과 똑같이 6~33%로 낮추고, 1세대 1주택 양도세 감면 대상에서 제외되는 고가 주택 기준을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올리는 내용의 부동산 세제개편안도 담았다. 

당시 야권에선 강부자(강남 땅부자)를 위한 세제개편이란 얘기마저 나올 정도로 비판의 목소리가 컸다. 이 때문에 상속세율 인하 등 일부 세제개편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고, 소득·법인세 인하 관련해서 고소득자·대기업에 해당하는 부분도 일부 국회 논의 과정에서 철회됐다.

#. 박근혜 정부 : 증세 없는 복지(feat. 연말정산 파동)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은 '증세 없는 복지'였다. 공약가계부(국정과제)상 제시한 복지재원은 135조원에 달했고, 증세 없는 재원 조달책으로 세입 확충(53조원)·세출 구조조정(82조원)을 제시했다. 

이듬해 8월, 박근혜 정부의 새법개정안이 발표되자 증세 없는 복지가 과연 가능하냐는 논란이 터졌다. 직접적인 세율 인상엔 손을 대지 못했기 때문에, 주로 비과세·감면 제도 정비에 초점을 맞춘 내용이 개편안의 주를 이뤘다. 하나만 꼽자면, 고소득자에게 상대적으로 혜택이 큰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비과세·감면 축소가 근로소득세 부분에만 집중되면서, 서민·중산층의 세부담이 늘 것이란 우려가 터진 것이다. 

정부는 당초 세법개정안을 발표하면서 "상위 28%에 해당하는 연 소득 3450만원 사이 근로자의 세부담이 다소 증가한다"고 밝혔는데, 이를 두고 중산층 증세라는 비판이 높아졌다. 결국 '세법개정안 재검토'란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고, 세부담 증가 기준을 연 소득 3450만원에서 5500만원으로 수정했다. 

주요 국정과제였던 '창조경제'의 기반을 구축하는 부분도, 기술혁신형 인수합병(M&A)에 대한 세제지원을 늘리거나 창업 기업에 대한 과세특례를 추가하는 식의 정책 지원 수준에 머무르며 색깔 없는 정책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 문재인 정부 : 부자 증세(feat. 부동산)

문재인 정부도 공약 이행에 쓸 재원(5년간 178조원) 마련은 숙제였다. 박근혜 정부와 차이점을 꼽자면, 세율을 건드리는 인위적인 증세를 택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첫 세법개정안(2017년)엔 법인세 과표 '2000억원 초과' 구간의 세율을 22%에서 25%로 올리는 내용이 담겼다. 법인세율을 낮추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는 이전 정부의 논리를 뒤집은 것이다. 오죽하면, 당시 김동연 경제부총리(현 경기지사)도 "시장에 일관된 메시지를 줘야 하는데, 지키지 못해 유감스럽다"고 할 정도였다. 

소득세 최고세율(40→42%)도 올리면서, 조세저항이 덜한 고소득자가 증세 타깃이 됐다. 소득이 있어도 세금을 내지 않는 면세자 문제는 방치한 채, 고소득자에게만 세부담을 떠안기는 것은 공평과세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컸다.

문재인 정부의 조세정책 중 가장 논란이 됐던 분야는 '부동산 세제'였다. 이를 제외하고는 문재인 정부의 조세정책을 말하기 어려울 정도다. 

집권 1년 차에 세금부터 대출·청약·재건축 등 전방위적인 규제를 가했고, 이듬해 9월엔 종부세율을 노무현 정부(참여정부) 시절보다 높이고, 종부세 과표를 정하는 공정시장가액비율도 매년 올리는 식의 초강경 대책을 내놨다. 부동산 세제 당위성이야 어찌 됐든, 부동산 정책에 실패해 정권을 내줬다는 평가가 따라붙는다. 

#. 윤석열 정부 : 기업 감세(feat. MB 평행이론)

윤석열 정부의 조세정책은 이명박 정부와 닮은 꼴이란 얘기가 많다. 무엇이 가장 닮았을까. 바로 법인세 감세 정책이다. 

윤 정부의 첫 세법개정안은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 수준까지 낮추는 내용을 담았는데, 2008년 이명박 정부 때도 처음으로 같은 세율을 적용한 적이 있다. 기업 과세제도 손질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투자·상생협력촉진세제(옛 기업소득환류세제)를 없애고, 가업상속공제 적용 대상을 늘리는 안도 포함됐다. 

정부가 예측한 5년(2023~2027년) 동안의 감세 규모는 64조4000억원으로, 2008년 이명박 정부(82조5000억원) 이후 가장 크다. 문제는 ①세수입 여건이 좋지 않고 ②근본적인 세수확보 방안도 없는 상황에서 ③대규모 감세만 추진하려다 보니 재정건전성을 위협할 수 있단 경고의 목소리가 적지 않게 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거대 야당의 벽에 가로 막혀 법인세와 상속·증여세 인하 등의 세법개정안이 줄줄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데다, 비상계엄 여파로 윤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면서 윤 정부의 조세 제도는 미완성으로 남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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