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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국세청장님, 전통시장에서 현금영수증 받으셨나요?

  • 2024.02.02(금) 13:34

설 명절을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부터 정부부처 장·차관 등 기관장들이 전통시장 방문에 열을 올리고 있다. 명절만 다가오면 전통시장을 많이 이용하라며 대통령을 비롯한 기관장들이 전통시장을 방문해 소위 '먹방'을 하는 것은 하루 이틀 있었던 일도 아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의정부제일시장을 찾아 떡과 어묵국물을 먹으며 시민들과 인사했고, 김창기 국세청장은 지난달 29일 공주산성시장을 찾아 온누리상품권으로 떡과 밤 등을 구매했다. 

김창기 국세청장이 지난달 29일 공주산성시장을 찾아 온누리상품권으로 물건을 구매하고 있다. 제공: 국세청

하지만 이들의 방문으로 국민들의 전통시장 이용률이 높아질까? 라고 묻는다면, 확실하게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전통시장을 기피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낙후된 시설, 불편한 주차, 현금영수증·신용카드·온누리상품권 등 결제 불편, 상인들의 불친절 등 이유는 널리고 널렸다.

지난 2022년 9월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전통시장 관련 민원을 살펴보면 2020년 1월부터 2022년 3월까지 접수된 전통시장 민원 1만2001건 중 ▲전통시장 내 위법·부당행위 신고 9079건 ▲시장환경 정비 및 개선 요구 1884건 ▲전통시장 활성화 방안 및 소상공인 지원 요청 528건 ▲기타 510건 순이었다. 위법·부당행위 중에는 구매·결제 과정에서의 부당행위 439건도 포함됐다. 비중으로 따지면 미미한 숫자지만, 국세청에 신고된 것을 보면 무시할 수는 없는 수준이다.

국세통계연보에 공개된 최근 5년간 현금영수증 신고포상금 지급 현황을 살펴보면 ▲2018년 신고 7170건·포상금 지급액 14억9800만원 ▲2019년 7662건·14억7800만원 ▲2020년 1만1931건·23억6900만원 ▲2021년 1만3025건·28억4200만원 ▲2022년 1만6461건·39억1300만원으로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물론 현금영수증 신고 대상이 모두 전통시장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여전히 사람들에게는 전통시장은 신용카드 결제나 현금영수증 발급이 어려운 곳으로 인식되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 네이버 카페 등을 검색해보면 '온누리상품권 60만원을 사용하고 현금영수증을 요청했는데, 안 된다는 얘기만 한다'거나 '전통시장에서 현금영수증 3건을 발급 요청했는데 막상 발급된 것은 1건뿐'이라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소비자 앞에서는 현금영수증을 발급해 놓고 뒤에서는 몰래 취소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온누리상품권은 정부에서 예산을 들여 소비자가 5~10% 저렴하게 구매해 전통시장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지만, 정작 소비자들은 온누리상품권을 사용할 때 상인들의 눈치를 본다거나 현금영수증을 제대로 발급받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에서는 올해 온누리상품권 발행규모를 5조원으로 늘리고 올해 온누리상품권 발행 예산을 지난해 2898억원보다 615억원 늘린 3513억원으로 확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나랏일 하시는 높은 분들이 "전통시장이 저렴하니, 많이들 이용하세요"라며 '먹방'을 한다 한들, 갈 사람이 누가 있을까. 요즘 젊은 세대들은 할인쿠폰에 신용카드 혜택까지 알뜰히 찾아 물건을 구매한다. 대형마트 할인쿠폰을 받아 모바일로 장 보는 것이 더욱 편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

그럼에도 젊은이들이 전통시장을 가는 것은 직접 장보며 느낄 수 있는 재미와 신선하고 저렴한 상품을 살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이런 기대를 시장 상인들이 현금영수증 발급 거부로 꺾어버린다면 전통시장 활성화는 머나먼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국세청은 무엇을 해야 할까? 얼어붙은 경기에 먹고 살기 어려운 상인들을 대대적으로 단속해 현금영수증 발급 거부·미발급 가산세를 부과하라는 것이 아니다.

이왕이면 명절을 맞아 김 국세청장이 전통시장에 방문한 김에 현금영수증 발급 홍보와 상인들의 인식 개선 등을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김 국세청장이 온누리상품권으로 먹거리를 구매하며 현금영수증을 발급받은 모습을 보여줬다면 홍보 효과는 배가 됐을 것이다. 현금영수증을 기피하는 상인들에게는 경각심을, 전통시장 이용을 꺼렸던 사람들에게는 전통시장 분위기가 전과는 달라졌다는 홍보 효과를 가져올 수 있었을 것이다.

국세청의 한 직원은 "제가 국세청에 입사한 지 30년이 넘었는데 청장님들 명절 때마다 시장 가서 사진 찍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변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시대가 변했다. 이제는 보여주기식 전시행정은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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