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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상속세입니다"

  • 2024.07.04(목) 17:00

1934년부터 현재까지 상속세 역사

"내려라", "그냥 놔둬라" 요새 너무 시끄럽습니다. 가만 있는 나를 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일까요?

내 이름은 상속세입니다. 2년 전만 해도 내 친구 법인세를 가지고 치고 박고 싸우더니, 이제는 나를 가지고 싸워댑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요?

나는 1950년 3월 22일에 태어났습니다. 올해 만으로 74세이고, 호랑이띠입니다.

하지만 내 진짜 생일은 1934년 7월 1일입니다. 지금 내 정식 명칭인 '상속세 및 증여세법'은 사실 내가 전신 성형수술을 하고 난 뒤 이름입니다. 그 전에 난 '조선상속세령'으로 불리웠습니다.

조선상속세령은 지금의 대한민국 정부가 아닌,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법으로 현대의 상속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따지면 진짜 내 나이는 만 89세라고 할 수 있죠. 사람으로 치면 머리 아픈 것은 내려놓고 노년을 즐길 때지만, 사람들은 나에게 또 수술하라고 합니다.

대체 난 언제 쉴 수 있는 것일까요?

사람들이 나를 두고 싸우는 것은 내가 욕심이 많아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소득세나 법인세 등 다른 친구들보다 세금이 높거든요. 내가 전신 성형수술을 했던 1950년에는 최고세율이 90%였으니, 악명이 높을만 했죠.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욕심을 부린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면서 나라에는 돈이 없었고,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자산을 그대로 받아 사업을 했던 재벌들의 자산은 국가로 환수돼야 한다는 인식도 있었죠.

친일파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면서 부자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았던 것도 한 몫했죠. 높은 세율로 상속세를 왕창 걷어가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자는 것이 90%나 되는 세금이 탄생한 계기였습니다. 

내가 조선상속세령으로 살았을 때는 최고세율이 호주상속인 경우 16%, 호주상속이 아닌 경우 21%였습니다. 이것에 비하면 90%라는 세율이 무겁긴 합니다(호주상속은 첫째 아들(장자)에게 상속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고로 이 때 호주상속의 경우 상속액이 5000원 이하(호주가 아니면 1000원 이하 비과세)이면 상속세를 과세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서울 기와집 가격이 300~400원 정도 했다고 하니, 집 몇 채를 상속받아도, 상속세는 내지 않았죠.

이런 내가 무거워진 것은 1950년부터입니다. 상속액이 30만원 미만이면 비과세이긴 했지만, 30만~50만원 미만이면 25%에서 과표구간별로 5%포인트씩 높아지다가 5000만원 이상이면 90%의 세금을 부과했습니다. 과표구간만 15단계였죠.

그래도 상속인이 직계비속이면 100만원, 기타 7만원을 공제해주고 부양가족 공제는 호주상속이면서 과세가액이 300만원 이하인 경우 미성년자, 연로자(60세 이상), 장애인을 각 20만원 공제해줬습니다.

나름 이것저것 공제해주려고 애쓰는 모습도 보이지 않나요?

물론 폭발적인 인구 증가로 정부가 '2자녀 갖기 운동'을 하던 1976년에는 자녀 2명에 한해서만 미성년자 공제를 받을 수 있게 하기는 했지만요. 지금도 기초공제, 배우자공제, 인적공제, 가업상속공제 등 여러 공제를 해주고 있어요.

이게 없었다면 난 이미 세금이 과도하다며 돌을 맞았을지도 몰라요(이미 과도하다고 돌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긴 한 것 같습니다만).

그런데 90%이던 최고세율이 현재의 최고세율인 50%(최대주주 할증과세까지 더하면 60%)로 줄었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1950년 90%의 세율로 출발했던 상속세는, 박정희 정권 시절이던 1961년 기업들에게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를 재건하고 산업화에 앞장서라는 의미로 상속세 최고세율을 30%로 화끈하게 인하해줬습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가벼웠던 시기가 아닐까 싶네요.

그런데 이 때 탄생한 대기업들이 비자금을 만들어 자꾸 차명계좌로 돈을 빼돌리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니까 1968년 70%, 1975년 75%로 최고세율을 확 올려버려요.

하지만 1980년대부터는 최고세율을 67%로 인하하면서 상속세 부담을 낮췄는데요.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 시행으로 세원 포착이 더욱 쉬워졌다는 것이 그 이유였어요.

최고세율은 1997년 45%가 되기까지 계속해서 가벼워졌는데요. 여기에 제동을 걸게 된 것은 부정부패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문이었습니다.

1990년대는 정경유착에 의한 부정부패가 극에 달하며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던 시기였는데, 이로 인해 부정대출을 받았던 대기업이 파산하고 실업자가 증가하는 등 IMF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빈부격차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습니다.

그래서 2000년부터 상속세 최고세율이 50%로 다시 인상됐고, 이것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죠. 여기에 최대주주한테는 20% 할증과세까지 하면서 현재 최고세율은 60%가 된 것인데요.

이래도 욕심많은 것이 내 잘못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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