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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콜 세금의 시간여행(1909~2023년)

  • 2023.04.27(목) 12:00

1909년 양조시험소부터 2023년 주세율 변경까지

지난 11일 주류업계의 핵심 관계자들이 모처럼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하이트진로, 롯데칠성음료, 오비맥주, 국순당, 한국주류산업협회, 한국주류수입협회, 한국전통민숙주협회, 한국수제맥주협회, 막걸리수출협의회의 임원들을 비롯해 외식경영 전문가인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까지 총출동했는데요. 

이들이 모인 이유는 우리나라의 술을 한류콘텐츠처럼 브랜드로 만들어서 해외시장을 개척하자는 취지의 'K-Liquor 수출지원협의회'를 출범했기 때문입니다. 

4월 11일 출범한 K-Liquor 수출지원협의회 기념사진(출처: 국세청)

'K-Liquor 수출지원협의회'를 출범시키고 언론에 홍보한 기관은 국세청이었습니다. 국세청은 보도자료를 통해 "주류 무역수지가 심각한 상황에서 인프라 부족으로 해외시장 개척에 고전하고 있는 전통주 및 중소주류제조업체를 지원하기 위해 협의회를 출범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습니다. 국세청이 왜 주류 수출과 무역수지에 신경쓰는 걸까요. 국세청장까지 나서서 술 세일즈에 진심을 다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 배경에는 오랜 역사와 전통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100여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보겠습니다.   

국세청은 왜 술에 유독 진심일까

세금징수기관인 국세청이 술 수출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이유가 뭘까요. 가뜩이나 올해 1~2월 세수 실적이 작년보다 15조원 넘게 부족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인데요. 본연의 세금징수 업무를 제쳐놓고 주류 무역수지를 걱정한다니, 오지랖이 너무 심한 건 아닐까요. 

마치 이런 질문이 나올 것을 예상이나 한 듯, 국세청은 보도자료 맨 뒷장에 '국세청이 주류 행정을 담당하는 이유'를 적어놓았습니다. 

그 이유는 주요 선진국들이 국민건강과 직결되는 주류에 대해 면허제도를 채택하고, 주류의 제조와 유통의 전 과정에 대해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민들이 술을 너무 많이 마시면 건강에 해롭기 때문에 아무나 함부로 만들거나 유통할 수 없도록 통제한다는 얘기죠. 

그래서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이 주류의 제조·판매에 대한 면허제를 시행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무려 1909년부터 면허제를 도입했다는 설명입니다. 

1909년은 일제강점기 초반으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해이기도 하죠. 일본은 오래 전부터 주류를 국세청에서 관리하고 있었는데, 우리나라도 그 영향을 받아서 주세행정 체계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현재 제주도에 위치하고 있는 국세청의 주류면허지원센터가 114년의 역사와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는 소개도 나오는데요. 여기에서 1909년부터 주류의 품질분석관리와 양조기술 지원 등을 수행하고 있다는 겁니다. 당시 한국정부 양조시험소로 창설해서 1949년 재무부 산하, 1966년 국세청 산하 기관으로 바뀌었고, 1970년 국세청기술연구소에 이어 2010년 주류면허지원센터로 이름이 바뀐 것입니다.  

국세청이 주류 행정을 담당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거래질서 관리입니다. 지방국세청 7개와 세무서 133개에서 주류유통 정보시스템과 전자세금계산서를 토대로 철저하게 주류 거래질서를 관리하고, 안정적으로 주세를 징수하고 있습니다. 

집에서 술을 만들지 못하도록 감시했던 '밀주단속'도 그 업무 중 하나였는데요. 일제강점기부터 시작한 밀주단속은 광복 이후에도 국세청 소속 세무서 직원들에 의해 계속되기도 했습니다. 

'앨콜분'부터 종량세까지

그렇다면, 현재의 주세 체계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주세법이 만들어진 것은 1949년입니다. 그 해 10월 21일에 제정된 주세법을 보면 '주정과 앨콜분 1도 이상의 음료'를 주류라고 규정했습니다. 

요즘 사람들에게 낯설게 느껴지는 '앨콜분'이라는 단어는 1968년에 '알콜분'으로 바뀌었고, 현재 주세법에서 사용하는 '알코올분'은 2010년에 개정된 것입니다. 

1949년 제정된 주세법 본문(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당시 주세는 주류의 용량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종량세'였습니다. 1석(약 180리터)의 단위로 매겨졌는데요. 탁주가 1석에 800원, 소주는 1석에 1만1000원, 맥주는 1석에 2만원이었습니다. 

1949년 제정된 주세법의 세율 조항(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국세청이 개청한 1966년부터 주세의 단위가 킬로리터 단위로 개정됐는데, 탁주는 1킬로리터에 1470원, 소주(희석식) 4970원, 위스키 2만2000원, 맥주 7만7830원이었습니다. 맥주 세율이 매우 높았고, 위스키의 세율도 높은 편이었죠. 

1968년부터 맥주 등의 세금이 종가세로 개정됐는데요. 맥주는 출고가격의 100%를 세금으로 부과했고, 위스키는 150%, 청주는 80%, 소주는 30%의 세율이 책정됐습니다. 이후 1970년대에 세금이 조금씩 오르면서 위스키는 250%, 맥주는 150%까지 인상되기도 했는데요. 

1990년대 이후 세율이 낮아지다가 2000년부터 소주와 위스키에 똑같이 72%의 세율을 매기게 됐습니다. 맥주는 2001년 100%의 세율로 돌아왔다가 2005년 90%, 2006년 80%, 2007년 72%로 조금씩 낮아졌죠. 2020년에는 맥주와 탁주의 세율이 종가세에서 다시 종량세로 개정됐고, 2023년 4월부터 맥주는 킬로리터당 88만5700원, 탁주는 4만4400원의 세율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주세는 얼마나 걷힐까

국세청 개청 첫 해의 주세는 63억원이 걷혔는데요. 1966년 전체 국세의 7% 수준을 차지했습니다. 10년이 지난 1976년에는 933억원, 1986년에는 5562억원이 징수됐습니다. 1990년에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했고, 1996년 2조원, 2003년 3조원을 넘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는 매년 2조원대 후반에서 3조원 내외의 주세 징수실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021년에는 2조6734억원이 걷히면서 7년 만에 다시 2조원대로 떨어졌습니다. 전체 국세에서 주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0.9% 수준이었습니다. 과거에 비해 주세의 비중에 상당히 줄어든 모습이죠. 

연도별 추세를 보면 경기가 침체됐던 시기에 주세가 덜 걷히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었던 1997년과 1998년의 주세 실적이 저조했고,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었던 2008~2010년 사이에도 주세가 3년 연속 감소 추세였습니다. 2015년 이후 3조원대를 유지하던 주세 실적은 코로나19를 겪은 2020년과 2021년에 급격히 줄어든 모습도 보였습니다. 

경제가 어려우면 술을 더 마실 것 같지만, 회식이나 접대와 같은 모임이 줄어들면서 술 소비가 오히려 감소한 것입니다. 실제로 코로나19 이후 주류 출고량이 감소했다는 통계 결과가 국세청을 통해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다만, 코로나19가 잠잠해진 2022년부터 주세 실적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는데요. 2022년 주세 실적은 3조7665억원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2021년보다 1조원 넘게 더 걷혔고, 전년대비 증가율은 무려 40.9%에 달했습니다. 

주세가 이렇게 많이 걷혔다는 것은 2022년에 술의 출고량과 수입물량이 확 늘어났다는 얘기죠. 정확한 수치는 국세청이 6월 말에 공개할 2분기 국세통계의 주류 출고현황과 주세 신고현황에서 확인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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