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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세극장]결혼한 남자, 사랑하면 안되나요

  • 2021.05.10(월) 07:59

내연녀 4억5천 받고 세금 1억1천 통보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어요.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끝까지 가보고 싶었어요.

그 남자를 사교 모임에서 처음 만났을 때, 제 나이는 27세였어요.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마음이 싱숭생숭했는데, 중년의 신사가 다가와 따뜻하게 손을 내밀었죠. 

다른 연인들처럼 커피숍과 노래방에서 데이트를 했고, 함께 등산도 다녔어요. 나이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대화도 잘 통했는데요.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는 그 남자와 밤새도록 통화해도 지루하지 않았어요. 

교제를 시작한 지 200일이 지났을 무렵 그는 저에게 감춰왔던 비밀을 털어놨어요. 그에게는 이미 아내가 있고 딸도 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2년 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갈 예정이라고 했어요. 

강남에 빌라를 구해놨으니 이제부터 거기에서 지냅시다. 이민가기 전까지 당신과 함께 하고 싶소.

우리는 마치 신혼부부처럼 오붓한 시간을 보냈어요. 그의 손을 잡고 동네 산책도 하고 시장을 다니기도 하면서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즐겼죠. 나중에 헤어지더라도 후회하지 않기 위해 지독하게 사랑했어요. 

그렇게 2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그는 미국으로 홀연히 떠났어요. 어차피 예정된 이별이었기 때문에 차분하게 그의 흔적을 지워나갈 수 있었어요. 가끔 추억을 꺼내보면서 살면 될 것 같았어요. 

임대사업을 하는 언니와 함께 지내면서 안정을 되찾았고, 시간이 더 지나자 그의 이름과 전화번호도 생각이 나지 않았어요. 미국에서 가족들과 잘 지내고 있을 그를 굳이 떠올릴 필요도 없었죠. 

그동안 잘 지냈소? 8년 만에 당신의 목소리를 들으니 이제야 살 것 같소. 우리 내일 만납시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왔다며 다시 연락을 해왔어요. 가족들을 미국에 남겨두고 혼자 왔다고 했어요. 집을 구할 때까지 당분간 우리집에서 지내고 싶다며 거침없이 다가왔죠. 

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지낼 줄은 몰랐어요. 그 후로 9년 동안 동거했으니까요. 가족들이 귀국한 후에도 그는 두 집 살림을 하면서 은밀한 만남을 지속했어요. 

금전 문제도 조금씩 얽혔는데요. 갑자기 그가 돈이 필요하다고 하길래, 언니의 도움을 받아 1억8000만원을 빌려주기도 했어요. 그는 한 달 후 건물과 땅을 팔아서 저에게 4억5000만원을 입금해줬고, 언니에게 빌린 돈도 모두 갚았어요. 

이제 내 인생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소. 고생만 시켜서 너무 미안하오. 다음 세상에 다시 태어난나면 꼭 당신과 결혼하겠소.

한번 쓰러진 이후 시름시름 앓던 그는 오래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어요. 저는 장례식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어요. 유족들이 저에게 행패를 부릴까봐 너무 겁이 났거든요. 

최대한 피하고 싶었지만, 그의 본처와 딸은 저를 가만두지 않았어요. 제가 받았던 4억5000만원은 빌려준 돈이기 때문에 당장 갚아내라고 했어요. 결국, 소송까지 갔는데 법원은 "당시 연인관계에서 증여했거나 차용한 돈을 변제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돈을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했어요. 

하지만, 세금 문제가 남아있었어요. 국세청은 상속세 조사를 하다가 저에게 입금된 4억5000만원에 대한 증여세와 가산세 등 1억1000만원의 세금을 추징했어요. 너무 억울해서 세무서를 찾아가봤더니 더욱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어요. 

이미 내연녀 두 명이 세무서에 출석해서 진술하셨습니다. 모두 동거를 했었고 사실혼 관계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정말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어요. 어디까지가 진심이었고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묻고 싶지만, 다시는 그의 대답을 들을 수 없겠죠.  겨우 마음을 추스리고 추억의 상자를 다시 열어봤어요. 그와 함께 찍었던 사진을 챙기고, 문자메시지를 모아서 사실혼 관계를 입증하기 위해서였죠. 

그런데, 입증을 할수록 더욱 비참해졌어요. 그 정도의 사진이나 문자메시지는 혼인관계가 아니라 단순한 내연관계에서도 충분히 발생할 정도라고 하더군요. 

결국, 추억은 모두 산산조각났고 깔끔하게 세금 1억1000만원을 내는 것으로 정리했어요. 대리인을 선임한 소송비용도 너무 아깝지만 한 푼도 돌려받을 수 없다고 하네요. 

☞절세 Tip
본인 계좌로 입금된 예금이 증여가 아니라 다른 목적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입증할 책임은 납세자에게 있습니다. 증여한 사람이 대여금을 변제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자료가 없고, 사실혼 부부로서 공동생활비를 받았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에 과세처분을 뒤집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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