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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금 기생충입니다
이상원 기자 l

입력시간 | 2019-06-18 11:24

저도 세금입니다. 하지만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세금이죠. 소득이나 재산, 소비라는 확실한 밥줄을 갖고 태어난 다른 세금친구들이 있어야만 겨우 살 수 있거든요. 처음부터 친구들에게 덧붙어서 기생(寄生)하도록 만들어진 것이죠. 이제부터 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저는 태어날때부터 독립적이지 않았어요. 1949년 12월 22일, 지방세가 생길 때 지방세를 걷는 방법 중 하나가 저였거든요. 지방세 중 일부는 따로 걷지 않고, 국세에 부가(附加)해서 걷기 시작했고, 그 이름을 '부가세(附加稅)'라고 지었습니다. 제 이름이죠.

하지만 부가세라는 제 이름은 실제로는 잘 불려지지 않아요. '부가가치세(附加價値稅)'라는 돈 잘 버는 친구를 줄여서 부가세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세금친구 중에서는 가장 덩치가 큰 친구 중 하나인데요. 이 친구의 별명이 제 이름과 같다는 이유로 저는 제 원래의 이름을 잃게 된 셈이죠. 실제로 누군가 '부가세'를 말하면 저를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대부분 제 친구 부가가치세를 생각하죠.

서택스(Sur-Tax)라는 외국 이름도 있긴 있어요. 물론 이것도 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죠. 외국에 가면 겨우 이름 좀 불릴 수 있을까 모르겠지만요. 이렇게 돌아보니 이름조차 제대로 없는 삶이었네요. 처음 저를 소개할 때 이름부터 말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슬프네요.

하지만 제 삶의 그림자에서 이름은 아주 일부분일 뿐이에요. 살아가는 모습은 더 가관이죠. 이미 얘기했던 것처럼 저는 여러 친구들에게 기생하며 살거든요.

친구가 세금을 벌어오면, 저는 제 친구에게 세금을 준 사람에게 가서 나도 이 친구와 한몸이니 나한테도 세금을 좀 달라고 합니다. 때문에 사람들이 느끼는 세금에 대한 거부감이 더 커지기도 하죠. 친구만 있는 줄 알았는데 뒤에 저까지 들러붙어서 세금을 내 놓으라고 하니까요.

친구들에게 들러붙을 때 제시하는 핑곗거리도 다양합니다. 핑계에 따라 이름도 다르게 불러달라고 요구하죠.

제일 유명한 핑계는 교육이에요. 이 때에는 이름도 교육세로 바뀝니다. 교육세는 학교도 짓고 아이들 교육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겠다는 이유로 여러 명의 친구들에게 기생하고 있어요. 개별소비세와 교통에너지환경세, 주세 같은 친구들이죠.

이름만 보면 아주 멀쩡하고 교양 있어보이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알고보면 그 생명줄이 되고 있는 친구들의 질이 썩 좋지 않아요.

개별소비세는 사치성 물품과 유흥행위 등에 부과되고, 교통에너지환경세는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연료에, 주세는 술에 부과되는 세금이거든요. 쉽게 말해 술이 많이 팔리고 유흥매출이 늘고, 환경을 해치는 연료의 소비가 늘어야 세금친구들의 덩치가 커지고, 덩달아 저도 살찌워진다는 말입니다.

심지어 이자놀이로 벌어들인 은행들의 금융소득에도 교육세가 붙는데요. 사실 저 스스로도 은행과 교육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 왜 여기에 교육세를 매기는지 아직도 이해를 못하고 있어요.

뿐만아닙니다. 교육세는 지방교육재정을 살찌우기 위한다는 이유로 2001년에 지방교육세가 분리되기도 했는데요. 취득세, 등록면허세, 레저세, 주민세(균등분), 재산세, 자동차세, 담배소비세 등 여러가지 지방세에 기생하죠. 막말로 우리동네에서 담배가 많이 팔리면 우리동네 교육재정에 도움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생깁니다.

또 하나 제가 친구들에게 기생하기 위해 유용하게 활용하는 핑계가 있는데요. 바로 농어촌의 경쟁력을 키우고, 농어촌지역 개발을 위해 쓰이겠다는 핑계에요. 농어촌특별세라는 특별한 이름을 쓰죠. 1993년에 우루과이라운드라는 무역 협상이 타결되자 농산물 수입을 걱정하던 농민들이 크게 들고 일어난 적이 있는데요. 이 때 저를 만드는 분들이 당근으로 내 놓은 게 농어촌특별세였어요.

농어촌을 위한다는 핑계는 확실하지만, 사실 친구들을 보면 멋쩍을 때가 많아요. 농어촌특별세는 증권거래세, 종합부동산세, 개별소비세, 취득세, 레저세 등에 기생하거든요. 국세나 지방세를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기생하고 있는 건데요. 특히 주식을 사고팔 때 내는 증권거래세에는 왜 농어촌특별세가 기생하느냐는 지적을 끊임 없이 받고 있기도 합니다. 뭐 그래도 전 개의치 않아요. 아무튼 전 특별하니까요.

이외에도 저는 여기저기에 기생하고 있어요. 존재감이 약해서 눈에 띄지 않을 뿐, 알고보면 저인 경우가 많죠. 소득세에 찰거머리처럼 들러붙어 있는 지방소득세, 재산세 고지서에 포함돼 나가는 도시지역분(도시계획세) 등도 저의 또 다른 모습이에요.

기생하는 삶이 나쁘지만은 않아요. 세금이 많다고 욕을 먹을 땐, 사람들이 저를 욕하지는 않거든요. 전부 친구들만 욕하죠. 월급에서 소득세를 많이 떼 갔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들은 있지만 지방소득세를 많이 떼갔다고 욕하는 사람들은 못봤어요. 재산세 도시지역분은 재산세만큼이나 덩치가 크지만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고요.

가끔 급여명세서나 고지서를 자세히 들여다 본 사람들이 저를 발견할 때도 있지만, 크게 신경 쓰는 사람들은 없어요. 그 때에만 '욱' 하고 말죠.

저를 만든 분들이 저를 없애려 할 때도 많아요. 제가 가장 아끼는 교육세와 농어촌특별세 같은 경우에는 폐지하는 법이 국회를 통과하기 직전까지 갔었죠. 뭐 저도 인정하고 있는 것 처럼 왜 친구들에게 붙어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하지만 저를 없애려는 시도는 매번 실패했어요. 교육계나 농어촌이나 제 덕을 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거든요. 그분들은 제가 사라지는 걸 두려워하죠.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도 좋고요. 저는 앞으로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거에요. 기생하면서도 이렇게 힘이 세졌거든요.

여러분들은 언제까지고 저를 모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앞으로도 여러분들이 내는 세금, 그 친구들 옆에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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