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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세율 정책', 정치에 먹혀버리다

  • 2022.12.29(목) 14:00

[프리미엄 택스리포트]택스형

역시 결과는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세율 인하를 핵심으로 한 '법인세 과세체계 조정'은 사실상 실패로 끝이 났습니다. 

출발점에서부터 정쟁의 도구로 소모됐고, 닳고 닳을 즈음 되자 정치권의 '야합'의 수단으로 활용되어진 모습입니다.

정책효과, 조세 원칙 등은 접어두고 정치적 득실만 따진 정치권이 가장 비난받아야 할 대상이지만, 애초에 보다 설득력있고 현실적인 논거와 정책방향을 제시하지 못한 정부도 남탓만 할 처지는 아닌듯 합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했던 법인세율 인하 및 과표구간 조정안은 현행 4단계 과표구간을 3단계로 줄이되, 세율체계는 사실상 2단계로 유지하는 것이 기본틀. (표 참조)

2022년 세제개편안 중 법인세율 개정안(출처: 기획재정부)

핵심은 현행 3000억원 초과 구간에 적용되는 25%의 최고세율을 22%로 3%포인트 낮추는 것이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이 정책을 내놓으면서 앞세운 논리는 '경제성장'이었습니다. 

감세정책이 가져오는 파급효과(낙수이론)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죠. 문제는 정부의 제1논리가 설득력을 크게 갖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이미 지난 2009년 낙수효과 운운하며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정책을 추진했던 이명박 정부의 결단은 기업들이 투자주머니를 닫고 사내유보금만 잔뜩 쌓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오죽했으면 이명박 정부의 뒤를 이은 박근혜 정부가 기업들이 쌓아놓은 사내유보금을 쓰도록 유도하기 위한 억지춘향에 가까운 제도인 '가계소득 증대세제 3대 패키지(배당소득증대세제·기업소득환류세제·근로소득증대세제)'를 도입했을 정도였죠. 

다시 말해 법인세율 인하 혜택은 기업들의 배만 불린다는 인식이 쌓여 있는데다 증명에 실패한 낙수효과 이론을 전면에 내세우니 정부 정책의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특히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구간의 감세폭(3%포인트)이 상대적으로 크게 설정됐으니 문재인 정부 시절 법인세 최고세율 환원의 주체였던 거대야당, 민주당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정책적인 측면, 정치적 측면 모두 설득력이 부실하다보니 경제현장에서의 실제 필요성과는 별개로 '정쟁의 먹잇감'으로 전락해 버린 것입니다. 

정부안 발표(2022년 세법개정안) 이후 이 화두를 둘러싼 크고 작은 논쟁이 치열했습니다. 

야당의 전략자산은 '부자감세 프레임'. 

이에 반해 미국발 금리 인상 등 여파에 따른 경제위기설이 대두되면서 재계를 중심으로 정부안의 국회 통과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게 형성됐습니다. 

부자감세 프레임을 깨뜨리기 위해 정부도 전략을 수정, 해외기업 등 투자 유치를 위해 주변 경쟁국 대비 유리한 법인세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는 논리로 맞섰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법인세율 문제를 놓고 부자감세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 애매한 측면이 큽니다. 

실질적으로 대기업이 가지고 있는 경제적 파급효과 등의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법인세 인하 정책의 포커스는 상대적으로 돈 많고 잘 버는 대기업에 맞춰질 수밖에 없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죠. 

어떤 측면에서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이 불러온 부정적 파급효과, 즉 거대한 사내유보금 문제가 국민들 뇌리에 박히면서 정치적으로 부자감세 프레임 공격에 방어력이 매우 취약해진 것 아닌가 싶습니다. 

정부도 보다 세세하지 못했던 측면이 많습니다. 

우수한 기업 경영 환경을 만들어 해외 기업 등을 유지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도 지난 2009년 법인세 인하 정책의 효과로 얼마나 많은 해외 기업 투자 유치 등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납득할 만한 통계 등 근거는 제시하지 못했죠. 

무턱대고 '투자유치'만 운운하니, 설득력이 있다 생각하다가도 고개가 갸웃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결국 이 문제는 내년도 예산안과 연동되어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 놓여 있다가,  조세관료 출신 국회의장(김진표)의 '1%p 중재안'을 여야가 덥썩 물면서 허무하게 종지부를 찍고 말았습니다.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한 2023년 법인세율 수정안(출처: 의안정보시스템)

과표구간 조정은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버렸고, 현행 과표구간을 그대로 유지하며 구간별 적용하는 세율을 각 1%포인트씩 낮춘 것입니다. 

아무리 정치가 타협이라지만, 이 같은 스토리 전개는 도통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1%포인트 인하로 방어했다손 쳐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대기업들은 수 천억원의 감세효과를 보게 됐으니 민주당 입장에서 표면상 부자감세를 막지도 못한 것인데다 정부 또한 경쟁국 대비 유리한 법인세 환경 조성에 실패했으니 그 누구도 손에 쥔 것 하나 없는 그런 상황이 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차라리 민주당이 통 크게 정부안을 받아주고, 정부 또한 시행 후 사내유보금 과다 비축 등 부작용 발생시 보완하는 정책대안 마련을 약속하는 등의 보다 진일보한 정책적 접근법을 택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사실 법인세율 정책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국내 환경은 물론 국제 환경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고, 이 환경 변화에서 법인세율 정책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느냐는 그 시대의 시대정신에 따라 정해지기 때문이죠.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한 가지입니다. 정치가 과도하게 개입되어 시대정신과 동떨어진 쪽으로 방향타를 잡게 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정치권에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이 내린 지금 이 결정이,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는 시대정신에 가장 부합한 결정이었는지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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